「정치자금 과민증」을 없애려면(성병욱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요즘 세상이 시끄러운 「정보사땅 사건」을 둘러싸고도 역시 배후설과 정치자금 유입설이 한창이다.
「수서사건」때도 그랬듯이 땅과 이권에 얽힌 대형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예외없이 배후설과 정치자금 유입설이 붙어다닌다. 실제로 수서사건 때는 여야 국회의원과 청와대 비서관 등에게 뇌물성 로비자금이 오간 증거가 잡혀 상당수가 구속까지 됐다. 그럼에도 더 큰 「배후」와 정치자금의 수수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선거비용 천문학적
정치인들이 평소 쓰게 되는 돈의 규모는 정상적인 수입으로는 감당하기가 불가능하다. 특별한 재력가가 아니면 남에게 손을 내밀게 되어 있다. 뭉칫돈이 들어가는 선거 때가 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사정은 정도의 차이는 크지만 외국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정치자금의 경우 문제는 그 필요여부가 아니라 규모와 조달방법이다.
정치자금 정치비용의 규모는 적을수록 좋다. 그러나 정당을 일시적인 선거조직이 아닌 당시조직으로 운영하는 우리나라 정당들은 조직의 유지관리나 각급 선거대비 활동에 평시에도 거대한 비용을 필요로 한다. 특히 자금조달이 비교적 용이한 여당의 경우가 심하다. 선거때는 그 비용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급팽창한다.
공화당 정권의 마지막 대통령 직접선거였던 71년 선거에서 여당은 2백억원 내외를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의 일반예산 규모가 3천6백70억원이었던데 비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87년의 13대 대통령선거는 16년여만의 직접선거인데다 선거전도 치열해 어마어마한 선거자금이 투입되었다. 야당에서는 집권민정당이 2조원 정도를 썼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일방적으로 부풀린 주장이라 하더라도 그 규모가 엄청났던 것만은 분명하다. 정치자금의 조달은 첫째 합법적일수록,둘째 부담기반이 넓고 간접적일수록 좋다.
우리 정치자금법상 합법적인 조달방법은 네가지뿐이다. 당원이 내는 당비,정당 및 의원후원회의 후원금,개인 및 법인·단체의 기탁금,국가의 정당보조금이다.
합법적인 정치자금 중에서도 후원금·기탁금 같은 정치헌금 보다는 당비의 비중이 큰 것이 좋다. 같은 당비도 몇몇 당간부가 부담하는 것보다는 당원 전체가 참여하는게 바람직하다. 정치헌금도 소수의 거액헌금보다 다수의 소액헌금,직접헌금보다는 단체를 통한 간접헌금이 보다 건강한 헌금이다.
○정치 부패화로 직결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대체로 바람직한 방향과는 정반대다. 네가지 합법적인 모금파이프보다는 비합법의 「검은 파이프」가 더 굵다. 당비도 기반이 넓은 일반 당비보다는 특별당비 비중이 더 크고,헌금도 단체를 통한 간접기여 보다는 직접수수를 선호한다. 유장순전경련회장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기탁금을 거두지 않겠다는 것도 생색 안나는 단체모금 보다는 줄 바엔 직접주겠다는 회원사의 의식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선거때가 되면 직접거래의 검은 파이프는 급격하게 더 굵어진다. 71년 선거때 공화당 정권은 각 기업으로부터 이권과 연계해 선거자금을 긁어 모았다. 심지어는 외국기업에까지 손을 뻗쳐 미국의 걸프사로부터 받은 자금은 나중 미국 증권관리위에 의해 낱낱이 폭로된바 있다.
81년 11대 국회의원 총선거때 집권한 신군부는 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거두지 않았지만,개별기업들이 여당후보들을 직접 돕도록 연결시키면서 중앙의 선거자금은 정부예산중 감사대상이 아닌 항목에서 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85년 12대 총선때는 다시 기업에 손을 벌리기 시작해 87년 대통령선거 때는 대대적으로 정치자금을 긁어 모았다. 돈을 긁어 들이다 보면 탄력이 붙어 필요한 정도를 넘게되고 거기서 「떡고물」,심지어는 「떡덩어리」까지 챙기는 사람이 생긴다. 거액의 정치자금을 내는 쪽에도 반대급부가 없을 수 없다. 이렇게 정치자금 공급 및 조달의 과점현상은 필연적으로 정치부패와 연결되게 마련이다. 12월에 있을 14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도 막대한 선거비용이 들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합법적인 네가지 방법만으로 선거자금을 조달하라는 것은 공허한 소리로 들릴는지 모른다. 그러나 선거비용이란 지금같이 방만하게 쓰려면 끝이 없다. 최대한 줄이겠다는 각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자금조달 면에서도 합법적인 자금파이프는 넓히고 「검은 파이프」를 좁히는 운동을 지금부터 당장 벌여나가야 한다.
○검은 파이프 줄여야
정당간 협의로 선거운동 냉각기를 두는 것도 좋고,대통령 선거법을 고쳐 후보들의 방송연설 비용을 국고부담으로 하는 등 공영부담 몫을 늘리는 것도 선거비용을 줄이는 한 방법이다. 자금조달 면에서도 당비·기탁금·후원금을 최대한 늘리도록 하는 정당의 자구노력과 함께 재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기탁금을 거두지 않겠다는 전경련측의 검토는 재고되어야 한다. 안 거두는게 아니라 오히려 공개적인 기여폭을 늘려주도록 해 직접적인 뒷거래의 수요를 줄이는게 옳다. 지금같은 정치자금 뒷거래 선호가 고쳐지지 않고선 사건만 터지면 붙어다니는 고질적인 우리사회의 「배후 증후군」「정치자금 과민증」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논설주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