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준상 6단 ● . 윤찬희 초단
막힐 수 없으니 41로 나가야 한다. 42로 몰면 팻감이 없으므로 43이어야 한다. 여기서 44로 호구하자 폐석 같던 백돌들이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백홍석.김지석 등 구경하던 신예 강자들이 문득 "누가 곤마야"하며 웃고 있다.
윤준상 6단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윤찬희 역시 그 힘을 뼛속 깊이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48도 강인한 수. 50으로 머리를 두드리며 백은 드디어 중앙으로 날개를 폈다. 눈을 의심할 일이지만 폐석(?)들이 강시처럼 살아나 빵때림한 흑을 쫓는 장면이 전개되고 있다.
돌의 접촉은 오묘한 변화를 일으킨다. 그 기미, 즉 돌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낄 줄 알아야 바둑의 장인(匠人)이라 할 수 있다.
46으로 하나 걸친 다음 51로 공격한다. 사실 좌하 백은 충분히 공격당할 수 있는 돌이다. 그러나 52로 슬쩍 어깨를 짚는 순간 공수의 분위기는 백팔십도 바뀌고 만다. 정문의 일침 같은 52-행마란 이런 것이다. 52가 놓이자 윤찬희 초단은 A의 끼움수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보강하자니 억울하고 놔두자니 운신이 어렵다. 점점 더 꼬여가는 국면에 뒷목이 뜨거워진 윤찬희는 문득 창밖을 내다본다. 높은 산은 많다. 나는 혹시 그 산들을 구두끈도 제대로 매지 않은 채 오르려 했던 것은 아닌가.
박치문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