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너무 차가운 SUN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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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0일 두산과 삼성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 경기가 시작되기 전 삼성의 더그아웃을 찾아간 기자가 선동열(사진) 감독에게 "오늘 내야진은 어떻게 운용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주전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내야에 구멍이 뚫린 상황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선 감독은 대뜸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나중에 전광판에 이름 뜨면 알 것 아니오"라고 쏘아붙였다. 꼴찌 주위를 맴도는 팀 감독의 고충을 이해하더라도 황당한 반응이었다.

경기 전 기자들은 더그아웃의 양팀 감독들을 찾아가 사전 취재를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도, 일본 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팀과 관련한 여러 정보와 뒷얘기들을 취재해 팬들에게 소상히 알리기 위해서다. 감독이 보고 싶어서 더그아웃에 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선 감독은 귀찮아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아예 운동장에 나가 있다가 경기 시작 직전에야 더그아웃으로 들어오기 일쑤다. 노골적으로 기피하는 자세다.

삼성 구단 관계자들은 "천성적으로 낯가림이 심해 그렇다"고 감독을 감싸지만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44세로 8개 구단 감독 중 막내인 선 감독의 이런 배타적 자세는 다른 구단 감독들과 확연히 대비된다. 65세의 김성근 SK 감독은 기자들이 몇 번을 물어도 귀찮은 내색 없이 성실하게 답해준다. 올해 환갑인 김인식 한화 감독도 이런저런 질문에 얼굴 한번 붉히지 않고 친절히 응대한다. '감독이 선수단의 얼굴'이라는 투철한 직업의식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이다.

팀 성적이 바닥권을 헤매면서 삼성 선수단과 프런트도 동요하는 기색이다. 이럴 때일수록 감독이 자중자애하고,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처신을 하길 바란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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