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월남파병 박대통령 각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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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하얀 전쟁』『플래툰』『7월4일생』『지옥의 묵시록』『디어헌터』… 베트남전쟁을 다룬영화는 요즘도 끊임없이 나온다. 그리고 인기가 있다. 이 전쟁에 참전했던 한 특수부대원을 내세운 영화 『람보』는 할리우드식 잔인한 폭력에 미국인의 턱없는 우월감을 덧씩운덕분에 속편까지 여러개 냈다.
조앤 바에즈, 보브 딜런같은 반전가수들은 60, 70년대 우리나라 젊은 세대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극장에서 영화가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짠짠짠』하는 팡파르와 함께 「월남소식」이라는 자막과 야자수 풍경이 등장하던 그 시절, 많은 젊은이들은 자취방 구석에서 금지곡이던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g in The Wind)』에 귀를 기울였다.
전쟁이 끝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국내작가들도 베트남전정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머나먼 쏭바강』『인간의 새벽』(박영한), 『무기의 그늘』『탑』『몰개월의 새』(황석영), 『하얀 전쟁』(안정효), 『황색인』(이상문)… 등등.

<시장 가치에 주목>
비단 영화나 소설작품을 들지 않더라도 연인원 40만명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는 베트남체류 경험자(군인·민간인포함)들이 엄연한 증인으로 국내에 살아 있다. 현재는 많은 기업인들이 통일된 베트남을 드나들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월남참전에 대해서는 『역사상 최초의 해외원정』『70년대 경제도약의 밑거름』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많고, 『남의 부도덕한 전쟁에 끼어들어 귀중한 인명들을 희생시켰다』는 비판론도 여전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60년대 중반 한국의 처지로서는 미국의 파병요구를 뿌리치기 거의 불가능했고, 박정희정권은 「참전카드」를 비교적 쓸모있게 활용했다는 점인것 같다. 당시 파병조건과 규모, 시기를 두고 한미간에 벌어진 줄다리기는 우리로선 해방이후 대미 관계에서 최초로 경험한 실질적인 외교교섭다운 교섭이었다.
그 전까지의 한국은 도대체 미국에 내놓을 카드가 없었던것이다. 물론 우리측 카드에는 슬프게도 「명백치 예상되는 인명피해」가 들어 있었고, 실제로 5천여명이 전사했다. 그 피의 대가는 엄청나게 유용했다. 남아있는 우리들이 지금 그 혜택을 대신 누리고 있다. 고엽제피해로 아직도 신음중인 참전군인들 곁에서. 「월남파병」당시 박대통령을 비롯한 한국고위정책 결정자들은 베트남전쟁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 바탕위에 우리측의 이해득실을 면밀히 따졌다. 취재중 만난 김성은 당시 국방장관(68)은 『월남전은 민족해방전쟁이기에 애초부터 미국이 승리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동원 당시 외무장관(66)은 『전쟁터로서의 월남이 아닌 시장으로서의 월남에 주목했고, 이시장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크게보아 안보와 경제의 두 측면에서 박대통령은 참전이 불가피하다는 결단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득이 실보다 앞섰다.

<처음야도 미지근>
1965년 월남에 전투사단을 파견하는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될때 여당인 공화당에서 파법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대표적인 의원은 정구영과 차지철이었다.
두 사람중 정구영공화당의장(78년 작고)은 본래의 소신에 따라 반대했다. 그런데 전국구로 처음 국회의원(당시 6대)이 되었던 차지철은 뜻밖에도 박대통령의 「비밀지령」에 따른 것이어서 흥미롭다.
이동원 전외무장관의 증언. 『전투병력을 월남에 보낸다는 방침은 이미 걸정해 놓고 미국측과 파병조건을 교섭중이었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자꾸 발을 빼면서 조건을 내리깎는겁니다. 우리 국내에서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당히 높아야 「저것 봐라」며 미국을 다그치겠는데 당시의 최대 현안은 어디까지나 한일협정문제였거든요. 야당도 파병문제에는 세게 나오지 않았지요. 「미국이 정치 요구해오면 도리가없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미국은 먼저 군대를 보내놓고나서 협상을 하자고 재촉해댔고요. 은근치 애가 탑디다. 궁리끝에 박대통령과 상의해 시나리오를 짰어요. 차의원에게 「파병반대파」배역을 맡기기로 한겁니다. 비록 초선이지만 차의원은 대통령의 측근이었기에 영향력이 커 적격이었지요.』
65년7월2일 국무회의가 「월남지원을 위한 국군부대증파안」을 의결한 며칠후 차의원은 청와대로 호출됐다.
박대통렁이 운을 뗐다.
『월남에 군대를 보내긴 보내야겠는데 미국과 조건이 잘 안맞는 모양이야. 이장관이 고생하고 있어…. 그래서 말인데, 임자가 좀 도와야겠어.』
차의원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귀를 곤두세우자 대통령이 뜻밖의 말을 던졌다.
『월남파병에 반대좀 하지.』
깜짝 놀라는 차의원에게 박대통령은 시나리오의 내용을 설명했다. 골수충성파인 차지철이 즉시 행동을 개시한 것은 물론이다. 공화당내 소장파의원들이 차의원의 선동(?)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파병반대에 미온적이던 야당(민중당)의원들도 점차 목청을 높였다.

<진짜 반대론자로>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이동원씨의 제속되는 회고. 『당초 차지철의원은 월남전에대해 몰랐던것 같았어요. 그런사람이 대통렁의 지시를 받고 파병불가론을 외치는 입장이되면서 월남의 역사나 외세개입의 전말을 공부하기 시작한거지요. 아, 그러더니 진까 반대론자가 되고 말았지 뭡니까. 이론무장도 충실치 하고…. 무사적이랄까, 우직하달까, 하여튼 그의 곧은 성품과 민족주의적 경향이 월남아닌 월맹측에더 점수를 주게 된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쟁자체에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내더군요. 이틈에 여야 할것없이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자칫하변 파병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될 지경이었어요. 연극배우가 자기배역을 실제의 자기와 혼동한 격이라고나 할까요.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을 일이지만 당시는 아찔했습니다. 박대통령도 엉뚱한 사태진전에 몹시 불쾌해했지요.』 그즈음 차의원이 한잡지에 기고한 파병반대론의요지. 「첫째, 미국은 한국에 파병을 요청하면서 일관성있는 정책이 없다. 전쟁이란 이겨야하는데 미국은 월맹을 제압하려는 의지가 없다. 이 상태에서는 월맹과의 협상조차 불가능하다. 둘째, 월남정부의 부패와 무능이 문제다. 월맹과의 싸움이전에 장악지역의 치안은 유지돼야하지 않는가. 셋째, 미군과 한국군의 목숨값(월급)이 다른데 한국군이 무슨 사기로 적과 싸우겠는가. 이런 인종차별적 태도는 월남전이 백인의 또다른 식민지정책이라는 월맹의 선전을 그대로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군의 월남파병은 불가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정치는 명분 하나만을 변수로 하는 1차방정식이 아니었다. 파병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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