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한인사업가 한영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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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아마존이 좋아 아미존에 삽니다.』
아마존의 한국인 한영호씨(43)가 평생 처음으로 한국기자를 만나 하는 말이다.
요즘 세계 어느곳을 가도 한국교포가 없는곳이 드물지만 정글의 세계로만 알려진 아마존 한복판에서 한국교포를 만난 것은 너무 뜻밖이었다.
14세때 아버지를 만나 브라질에 이민온후 아마존 밀림지역의 한복판인 마나우스라는 인구1백만의 도시에 정착해살게 된것이 벌써 22년이 되었다는 한씨.
이제 이곳이 너무 좋아 다른곳으로 떠날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전자제품 판매상 2개와 의류점 2개를 경영하는 오리온회사 사장이며 이곳에선 유일한 한국인이자 성공적 사업가로 이곳 시장 압둘 비루질리오비도와 주베르토 메스트리 뉴아마조니아주 지사장등과도 깊은 교분을 갖고 있는 한씨는 부인 조영숙씨(38), 세아들(용운 13세, 용복 11세, 용덕 9세)과 남이 부러워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마나우스에선 최고급 아파트(미화 60만달러)에 살면서 한달이면 10여일을 해외여행이나 아마존에서 낚시와 열대우림여행을 즐기고 1년에 한달을 가족들, 특히 아들들을 위해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브라질 돈가치가 자주변해 정확한 재산규모를 말하긴 어렵지만 한씨는 또다른 아파트하나와 건물 2동, 별장지 2필지를 갖고 있고 브라질의 악명높은 인플레이션을 이기기위해 금과 달러등에도 재산을 분산해 놓고 있다.
『큰 재산을 모은것은 아니지만 회사운영은 브라질 현지인들에게 맡기고 여유있는 생활을 즐길수 있을 정도』라고 한씨는 말했다..
선거때가 되면 후보자들에게 헌금도 하고 있다는 한씨는 정글 아마존 상류사회의 일원임이 분명했다.
유력정치인들과의 교분은 물론 이곳 아마존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유대인등 성공한 기업인들에기 한씨는 신용있는 파트너이자 친구가 되어 있다.
한씨의 오늘의 성공은 그저 굴러들어온 것은 아니다. 14세이던 64년 대구에서 중학2학년때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 한창원씨(71·상파울루 거주)를 따라 형제들과 첫 브라질이민선을 타고 70여일만에 낯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 도착해 갖은 고생긑의 산물이다.
부모및 다른 6형제와 함께 한국의 첫 브라질 이민 정착촌인 아리당 농장에 노착한 한씨는 6년동안 정착지를 찾느라 무진 고생을 했다.
한국정부가 주선한 아리당농장이 농사짓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버지를 따라 브라질 도착 20일만에 한씨가족은 모지다스즈르즈·상파울루등을 전전했다.
한씨가족이 처음 시작한 사업은 과일장사. 온가족이 매달리는 이 장사때문에 14세 어린 한씨는 낮에는 부모를 도와 가게일을 보고 밤에는 학원에서 브라질어 로르투갈어를 공부했다.
부모들이 말배우는 속도가느려 한씨등 형제들이 배운 브라질언어는 장사에 커다란 밑천일수밖에 없었다.
평안도에서 월남해 대구에서 백화양말공장을 경영했던 아버지의 사업수완과 형제들의 언어소통이 이들의 새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상파울루에서 정착기반을 다지던 한씨가족이 열대밀림인 이곳 마나우스로 정착지를 바꾼 것은 이 지역이 자유무역항으로 선포되던 다음해인 69년.
새로운 사업기회가 있다고 판단한 아버지를 따라 온가족이 이곳으로 다시 이주했다.
한씨가족의 이곳 정착은 곧 밀림 아마존에 첫 한국인의 이민을 의미했다.
한씨가족은 아폴로라는 청바지 수입상을 차려 장사를 시작했다.
일본인과 중국인 몇가족이 살고 있었으나 대부분 농장노동자로 일해 아마존에서 첫 자영업을 시작한 동양인이기도한 한씨일가는 우선 신용이 없고 사람들을 모르는데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아 고전했다.
특히 여름(10월·l월)이면 50도를 오르내리는 열대기온은 이들 가족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씨가족이 갖고 있는 한국인 특유의 근면과 성실은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주었다.
정착 4년후엔 두 형이 결혼해 새로운 사업으로 독립해 나갈수 있었고 한씨도 78년 그후 이민온 부인과 결혼후 골드스타라는 전자제품 수입상을 차려 독립해 오늘에 이르렀다.
너무 어려 이민온 탓에 한국말을 잘못하는 한씨에게 유일한 걱정은 세아들의 교육문제.
모두 전교에서 1등을 해 공부를 잘하지만 브라질의 교육수준이 낮고 특히 다른 한국교포들이 없어 이들이 한국말을배울 기회가 전혀 없어 약간 낙천적이고 게으른 브라질 사람으로 변해버릴까 우려하고있다.
결혼은 꼭 한국여자를 찾아 시켜야겠다는 한씨는 그 때문에 애들 교육계획을 벌써부터 짜며 함께 여러나라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도록 하고있다.
한국도 가끔 방문해 고국의 정을 느끼고 오지만 인종차별없고, 순박하고, 착한 브라질 사람과 이곳 아마존이 좋아 떠날수 없다는 한씨는 이미 아바존 사람이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가요 가라오케만을 50여장이나 사두고 밤이면 부인과 합창하며 향수를 달랜다며 초대받은 기자에게도 우선 가라오케부터 권하는 그에게서 뿌듯한 동포의 정을 느끼게 된다.
지구의에서 한국과는 대칭점에 있는 이곳 열대 아마존의 유일한 한국인인 한씨 일가에게 자연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한다.
마나우스(아마존=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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