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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사회」를 사는 지혜(정년을 이긴다: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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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노­사 노­소 “딴 목소리”/정년 연장 시각 다르다/수명 늘어 55세는 한창 일할 나이 중견·노조/인사적체·고임금 초래 시기상조 젊은층·사
『60청춘·90환갑에 55세 정년이 말이나 되냐』『돈값도 못하는 중노인을 늘려봤자 생산성만 떨어진다』
정년연장을 둘러싸고 노­사·노­소장 직장인사이에 찬반 양론이 불붙고 있다. 대체로 중견직장인과 노조측에선 「평균수명 연장론」을 주무기로 정년의 벽을 깨려하는 반면,일부 젊은 직장인과 경영차측에선 「경제현실」을 내세워 현행 정년을 섣불리 늘릴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60세가 될까말까 했던 60년대의 55세 정년이 평균수명이 70세를 넘어선 요즘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 정년연장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년연장 반대론자들은 고령자를 기업에 계속 붙잡아 두는 것은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뺏는 것이며 이는 곧 나라 전체의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과천정부청사의 한 중견공무원은 『나이든 공무원을 보는 일부 젊은 공무원의 눈이 곱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이들 젊은 공무원들은 나이든 공무원들이 일은 하지않고 연금을 노리며 세월만 축내고 있다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비난을 아끼지 않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S사의 한 과장은 『그렇지 않아도 최근 진급이 늦어지는데 정년연장이 되면 동료간의 경쟁으로 피가 마를 것』이라고 승진적체를 우려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정년은 공무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인기업이 55세선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공무원의 경우 하급·기능직의 정년은 대부분 55세이며 고위직은 대개 61세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공무원과 개인기업의 중간형태인 공사는 58세 전후로 정년을 정한 경우가 많다.
이런 우리 정년의 현실에서 특히 정년연장을 절실히 바라는 쪽은 하위·기능직 종사들이다. D철강회사의 한 고참노동자는 『고위공무원·관리사무직은 정년도 길 뿐더러 퇴직해도 국영기업체 등에 한자리 꿰차고 들어가지만 생산직 종사자는 퇴직하면 그길로 끝이 아니냐』고 하소연했다.
하위직이든 고위직이든,기능직이든 사무직이든간에 정년연장 논의는 당위성을 떠나 세계적인 추세에 비춰볼때 우리나라가 매우 뒤처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부분의 국가가 적어도 60세이상을 정년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차츰 정년을 늘려잡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진국 등이 이같이 정년연장을 주도하고 있다해서 우리가 무턱대고 이를 따라갈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임금관리·취업형태·직업의식 등 정년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변여건이 이들 나라와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인구의 급격한 고령화추세에 따라 정년 연장이냐,불가냐의 쟁점을 점검해 합리적인 정년제도를 결정해 내는 일이 시급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들 쟁점중 흔히 논란을 빚는 것이 고령자의 업무수행능력이다. 최근의 각종 보고서는 일반의 막연한 인식과는 달리 적어도 60세 전후까지는 업무수행능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의 윌리스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언어이해능력 ▲언어구사능력 ▲추론능력은 60대 초반까지 젊을 때와 유사하게 유지되고 다만 ▲숫자감각만이 40대 초반부터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영국 캠브리지대학의 웰포드교수팀도 「노령과 인간숙련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aging human skill)」이라는 연구에서 ▲운동능력은 나이가 듦에 따라 감퇴하나 정확도는 유지되므로 시간제한이 없는 직종에서 근무는 고령자에게 유리하며 ▲시각의 감퇴는 촉각과 지각으로 보완할 수 있고 ▲높은 수준의 지식이나 경험을 요하는 작업은 고령자의 고도의 판단력이 유용할때가 많고 ▲학습적응능력의 감퇴는 나이가 들어도 매우 미미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고령자의 작업수행능력을 뒷받침하는 이같은 연구결과는 매우 많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반박할 논문 등은 드문 형편이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정년연장이 젊은층의 실업률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논란거리로 등장하고 있다. 인하대 박종기교수는 『정년이 연장되면 고령층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결론은 성급한 것』이라며 『고령자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말도 모든 직종에 합당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일부 생산라인에서는 책임감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나이든 사람에 비해 오히려 부실한 제품을 더 많이 만드는 경향도 있다고 말했다.
◎찬성/김유선전노협 조사통계국장/60세이상으로 늘려 자원활용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정년이 노령연금을 지급받기 시작하는 연령을 의미하며,영국 65세,독일 63세,프랑스 60세,일본 60세처럼 60세이상이 지배적이다. 또한 노령연금을 지급받는다고 해서 퇴직해야할 의무도 없다. 따라서 선진국의 정년제도는 고령자가 노동으로부터 은퇴,또는 휴식할 권리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년제도는 일정 연령이 되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직장을 그만둘 의무,또는 기업이 자동적으로 해고할 수 있는 권리로서 기능하고 있다. 더욱이 많은 기업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으로 정년을 55세로 정하고 있는데,이러한 조기 정년제도는 노동자들의 생활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커다란 인적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정년제도를 폐지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정년 연령을 60세이상으로 연장함과 더불어 본인이 원하는 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정년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첫째,1988년부터 실시하기 시작한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60세가 되어야 노령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현행 정년 55세는 평균수명이 60세이던 1960년대 초부터 관행화 되어온 것인데 지금은 평균수명이 70세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전반적으로 학력수준이 높아지고 결혼연령이 늘어남에 따라 자녀가 독립해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릴때까지 자녀부양기간이 증가하고 있는데,현행 정년 55세로는 부모로서 자녀 부양의무를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금년 7월부터 시행되는 고령자고용촉진법은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이 60세 이상이 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각급 노동조합은 좀 더 활발히 정년연장을 요구,관철시켜 나가야 할 것이며 정부 또한 공무원과 정부투자기관 노동자들의 정년연장에 전향적으로 나서야할 것이다.
◎반대/우종관경양자총연합회 이사/연공임금체계 개선없인 난망
인구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인구의 효율적 관리측면에서 정년연장이 얼핏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턱대고 정년을 연장할 경우 기업의 인력정책이나 연금지출 등 제반 인사관리 측면에서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첫째,연공임금체계의 개선없이 정년을 연장한다면 평균임금과 퇴직금 등 기업의 직간접 인건비가 크게 상승될 것이다.
둘째,기업마다 경영환경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정년연장이 이뤄진다면 그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예컨대 젊은 연령층이 많은 첨단기술분야의 회사에서 정년을 연장한다면 결국 생산성 악화로 젊은층은 물론 고령층까지 피해를 보게될 것이다. 이런 기업의 경우 일률적으로 정년보장보다는 차등정년제·재고용제 등을 도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셋째,고령근로자의 비능률과 배치전환의 문제다. 신기술의 계속적인 도입으로 직무능력의 고도화 등이 요구되는데 고령 근속자는 이에 대응하는 정신적·육체적 적응력이 낮다.
또 국내외의 시장구조 등의 변화와 사무자동화가 급속히 추진되는 노동시장의 상황은 고령자가 진입하기에는 벅찬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기업은 고령자가 많을 수록 이들을 현행 직무에서 다른 직무로 배치하는 직무설계의 부담을 더욱 크게 떠안고 있다.
넷째,연공적 인사관리정책하에서는 정년의 연장은 연장된 만큼 승진·승격이 늦어지고 인사적체가 유발함은 물론 신규노동인력의 시장진입을 막게된다.
정년연장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인력 구성을 고령화시켜 노무비용의 증대를 가져오고 복지기금·고임금의 유발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때문에 정년연장은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제도개선을 필요로 한다.
□특집부<특별취재반>
방인철차장
고혜련기자
배유현〃
김창엽〃
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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