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시열이 싹틔운 '진경 산수화'의 진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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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진경(眞景)산수의 출현에서 완성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대규모 기획전이 13~27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 제목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탄신 400주년 기념 서화전'. 미술관의 춘계 정기전이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은 "우암(1607~89)이 조선 성리학을 후기 조선왕조의 주도이념으로 확립해놓은 덕분에 조선의 독자적인 진경 문화가 싹틀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시에는 창강 조속(1595~1668)에서 겸재 정선(1676~1759)에 이르는 17, 18세기 문인.화가의 서화 100여점이 나온다. 글씨로는 한석봉체를 기본으로 한 송시열, 자유 분방한 서포 김만중, 호방한 여류 문필가 정명공주, 동국진체의 기틀을 잡은 윤순 등의 작품 14점이 포함됐다.

시대순으로 배열하는 전시의 첫 작품은 당대 최고의 문인화가로 명성을 날리던 조속의 '고매서작'. 매화나무에 앉은 까치를 실제로 사생해서 그렸다. 진경 산수화의 출현을 선도한 작품으로 꼽힌다.

화풍의 변천을 비교해 볼 작품으로는 각기 다른 '어초문답(漁樵問答)'이 있다. 어초문답은 어부와 나무꾼이 천지사물의 이치를 논한다는 북송시대 유학자 소옹의 글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 화원 이명욱이나 선비화가 홍득구의 작품은 나무꾼이 중국식 멜대(물건을 매다는 막대기)를 메고 있고 두 사람의 복장도 중국식이다. 반면 겸재 그림에는 한국식 지게가 등장하며 옷은 우암의 영향으로 백성들 사이에서도 널리 유행했던 학창의다.

김명국의 중국풍 신선이나 금니로 그린 몽환적인 산수, 김인관의 잉어, 송시열의 제자인 홍수주가 그린 포도, 정교한 인물화로 유명한 선비화가 윤두서의 '군마'나 '기마감흥'등도 진경의 혁신적 분위기와 전통적 중국풍이 혼재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알아보기 좋다.

전시의 백미는 31점에 달하는 겸재의 작품이다. 말년 절정기의 기량을 담은 '풍악내산총람' '단발령망금강' '금강내산' '장안사' '총석정'이 볼만하다. 한강 물줄기를 따라 만나는 광나루, 압구정, 인왕산, 남산 등의 경치를 그린 '경교명승첩'중 10여 점도 나온다. 자화상에 해당하는 '독서여가'는 재미있다. 풍경 속에 두 개의 그림이 나오는 데 모두 겸재 자신의 것이다. 부채 그림과 서재에 걸린 그림이다. 관람료는 없으며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 ~ 오후 6시, 02-762-0442

조현욱 기자

◆ 진경(眞景)문화=중국 그림을 베끼지 않고 조선의 풍경을 사실에 입각해 그리는 그림인 진경산수와 조선의 산수를 독자적인 표현방식으로 담는 진경시문을 아우르는 말이다.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이 정립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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