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씨는 이날 비슷한 수난을 겪었던 강남 일대 성당 10여곳에 대한 답사를 시작했다.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려는 목적에서다. 하지만 그는 낭떠러지에 떨어진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가 정성을 다해 만든 조각품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정말 난감합니다. 예술품을 이토록 손상하다니…." 崔씨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성모상.천사상 등의 피해를 본 많은 성당에서 교회 내부 일이 외부에 알려질 것을 걱정해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고, 또 막상 범인을 체포한다 하더라도 일단 손상된 예술품은 원상복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 입장에서 작품 관리를 소홀히 한 교회에 책임을 물을 수 있으나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이다.
"이번 사건을 종교 간 갈등으로 몰아가선 곤란합니다. 또 특정 광신도 집단의 정신나간 짓으로 돌려서도 안되죠. 핵심은 예술품을 보는 우리의 시각입니다. 종교를 앞세워 문화를 죽인다면 우리가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겠습니까."
노(老)작가는 핵심을 찔렀다. 문화보다 이념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경직된 사고를 질타했다. 억불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의 불교 문화재 파손이나, 종종 사회 문제가 됐던 단군상 훼손이나, 이번 성모상 수난 사건이나 그 뿌리는 같은 것이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함, 문화를 문화로서 대접하지 않는 근시안을 고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성모상 파손이 일어날 수 있다.
후세 역사가들은 '21세기 문화강국'을 주창하는 현재를 '문화 궁핍기'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석굴암.팔만대장경 등 과거 유물로만 문화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되새길 때다.
박정호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