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 중앙SUNDAY 인터뷰 전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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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07면

-노대통령이 “최상의 총리”라고 평가했는데, 어떤 점 때문이라고 봅니까.

"박근혜 전대표 대중성 있지만 난 국민 애환 직접 겪어"

“대통령의 좋은 평가에 고맙게 생각합니다. 총리로 임명된 직후 미군기지 평택이전으로 혼란이 많았어요. 청와대나 국방부 등에선 강경진압 쪽으로 결정을 내려놓고 있었지요. 범대위 등 주민들도 강경진압에 맞서 강경투쟁 일변도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내가 대통령에게 ‘대화와 합의를 통해서 이뤄야만 의미가 있다. 나는 대화로 풀고 싶다. 내게 기회를 달라’고 했지요. 강경 진압하기로 결정해놓고 있는 당시 상황이 어려웠지만 대통령은 내게 기회를 줬습니다. 9개월간 노력 끝에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공들인 만큼 보람도 컸습니다. 아마 대통령은 내가 원칙을 지키면서 대화로 풀어낸 것을 평가하신 게 아닐까요.”(그의 사무실 캐비넷 위에 부엉이 인형들이 잔뜩 올려져있었다. 그는 “부엉이 인형을 수집한다”며 “부엉이는 지혜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그가 부엉이를 수집한다는 것이 소문이 나자 해외 나갔다 온 지인들이 선물로 부엉이를 주기도 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도 부엉이를 선물했다고 한다.)

- 총리 재임중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퇴임 한달 전의 일입니다. 현대삼호중공업이 조선분야 세계 5위인데 수주한 물량 소화에 어려움을 겪어왔어요. 목포 공항 주변이 고도제한때문에 크레인을 증설 못해 발목이 잡혀있던 거지요. 6년간 미해결과제였습니다. 제 앞에 어떤 누구도 해결못했습니다. 내가 역점을 두고 노력한 결과 해결해냈습니다. 이걸 규제개혁 차원에서 해결한후에 현장을 방문해 규제개혁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현대삼호중공업 기업주와 노동자들이 어깨 펴고 앞으로 비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는 기업들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실감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해당 기업들이 향후 5년간 1조5000억원을 신규 투자할 수 있게 됐고, 5년 후부터는 매년 5조원이상 매출 증대와 1만8500명 정도의 고용 증대가 예측됐습니다. 과감한 정책적 결단을 내려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낸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낍니다. ”

-지난해 12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단축 의사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어느 대통령이나 임기말이 되면 무력감을 느끼지요. 당시 노대통령은 북핵 문제에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처리 지연 등에서 자신의 생각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에 대해 굉장히 답답해 했고, 그런 심정을 토로했지요.(이 대목에서 그는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 꽤 머뭇거렸다.) 노 대통령이 상당히 부진한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말씀 많이 나눴습니다. 대통령이 흔들림 없이 국정에 중심을 잡고 나가야 된다는 이야기 많이 드렸지요. 시간이 가면서 대통령이 중심을 잡게 된데 일정부분 일조한 측면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임기단축 의사를 밝히던가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신적은 없고, 소통이 막혀있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고통스러울 만큼의 답답함을 토로하시더군요. 하나의 고비였지, 딱히 버린다는 것 까진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총리 재임중 ‘국가비전 2030에 부응하는 건강투자 전략’과 관련해 부처간 협의절차가 없었다는 이유로 유시민 복지부 장관을 질책하셨지요.

“유장관은 정책적 사안과 정치적 감각 면에서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인인데도 행정부에 가서 적응력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그럼에도, 대화를 통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은 아쉽습니다. 사회적 합의라는 절차를 정책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을 들여야 하는데 그 점에 있어 좀 소홀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 질책성 얘기를 한 겁니다. 본인이 섭섭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의사는 확실합니까.

“경선에 참여할 것입니다.”

-출마 선언 행사는 언제쯤입니까.

“정치는 구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구도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 구도를 보면서 적절한 시점에 하겠습니다.”

-국민들에겐 어떤 점을 호소하실 겁니까.

“우리 사회는 지금 그야말로 이념갈등, 계층갈등, 지역 갈등, 세대 갈등으로 갈라져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민, 당과 당, 국민 서로 간의 소통은 막혀있습니다. 다음 정부는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을 가질때만 막힌 벽을 뚫을 수 있고, 갈라져있는 국민 에너지를 모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에 있습니다. 지금 국민적 에너지를 모으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과 소망이 있더라도 발휘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 한명숙이라면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노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겁니까.

“최근 노심(盧心:노대통령의 의중), 김심(金心:김대중 전 대통령 의중)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노심, 김심이 어디 있느냐를 갖고 대선주자를 평가하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 아닌가요. 핵심적 관심은 민심입니다. 저는 민심의 바다에 뛰어들겠다고 말씀드립니다. 자기 정책, 비전, 꿈을 갖고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때 김심도, 노심도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여정부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전반적인 정책기조는 옳았습니다. 평화번영 정책이나 정경유착 고리를 끊은 것이나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노력 말이죠. 이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소통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좀더 적극적으로 국민을 찾아가고, 만나고, 대화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설득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과의 대화도, 실패했더라도 또 시도하고 말입니다. 정부와 국회와의 관계를 더 친밀하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민생을 보살피고 따뜻하게 찾아가는 행보에 대해 좀더 치열하게 했어야 합니다. 그랬으면 국민이 외면하는 정도가 덜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한 전 총리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데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최근 “권력에서 제일 나쁜 건 예스맨”이라고 했습니다만.

“정 전의장은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진,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좋은 재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열린우리당 주자 중 누구보다 패기 있게 일하는 분이지요. 언론이 열린우리당 주자에게도 지면도 할애해주고, 일하는 모습도 사진 찍어서 내주고 한나라당과 공정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정 전 의장이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시선을 잘 안 주는 것 같아요. 지지도가 너무 낮은 상태에서 오래 지속되니 열린우리당 주자들이 상당히 위축되고 힘든 것 같습니다.
정 전 의장에게 우리 모두가 좌절하지 말고 여유있고 당당하게 해보자고 큰 격려를 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어떻게 일했는지는 정 전 의장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총리로 들어가서 당의 의견과 민심을 있는 그대로 과감하게 전달했다는 겁니다. 대통령이 불편해했을 정도로 소신있게 이야기했고 상당 부분 수용됐습니다. 긍정할 건 긍정하고, 균형 잡아서 방향 다르게 잡아야 할 것은 다르게 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아주 조용하게 했을 뿐이지요.”

-범여권 통합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몇차례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하나는 당대당 통합이 있을 수 있고, 힘들어지면 대선주자들끼리 모여서 규율을 만들수도 있고, 다양하게 구사될 수 있다. 어쨌든 탈당이나 분화니 이야기가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단일후보를 만들어내기 위한 합의를 만들어낼수 있을때에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당은 어떤길이 바람직한 가에 대해서 지도부에 위임했습니다. 지도부가 노력하는 것으로 압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돕고, (통합 노력도) 좀더 질서있게 행해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열린우리당은 열려있습니다. 통합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라면 기꺼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역할할 것입니다.”

-범여권 통합과 관련해 김근태 전 의장은 ‘5월말까지 당 해체’주장을 했습니다만.

“당 해체는 통합을 위한 어떤 수준이 전제돼야 하는 겁니다. 무조건 5월말까지 안되면 해체한다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김근태 전 의장도 다 만나겠습니다. 전당대회서 합의된 내용을 다시 확인되고 대화하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월말까지 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봅니다.”

-4ㆍ25 재보선 결과에 대해 언론은 한나라당의 참패라 하고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패배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간과되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우선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재보선때마다 표가 한나라당으로 쏠리는 표의 쏠림 현상이 멈췄습니다. 둘째 낡은 정치 없애고 새로운 정치를 해보자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시대정신이었는데, 부단히 노력해서 깨끗한 정치가 상당히 정착했는데 한나라당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보궐선거에서 공천비리가 나타났고 그것에 대해 국민들이 일침을 가한 겁니다. 세째는 비한나라당 진영에 ‘당신들도 정신 차려라. 합쳐서 일해라’고 압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전 시장의 대운하공약이 걱정이 돼서 밤잠이 안 온다고까지 이야기하셨는데.

“경부운하는 산업화 시대에 맞는 토목공사가 주가 되는 낡은 정책입니다. 경제비전치고는 19세기 식 아닌가 생각해요. 환경과 식수 문제는 정말 걱정돼요. 상수원 주변을 다니는 차조차 기름을 싣고 갈수 없게 돼있어요. 사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한 겁니다. 그런데 운하를 하면 한강과 낙동강에 기름을 실은 배를 띄울 수 밖에 없어요. 3000만명 이상이 먹는 한강과 낙동강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없어요. 경제성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이 전 시장은 최고경영자(CEO)출신입니다. CEO와 대통령의 리더십은 차이가 있다고 봅니까

“CEO도 CEO 나름이겠지요. CEO는 기업이 더 크게 되고 더 많은 영리를 추구하고 발전하기 위해 여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요. 물론 제대로 된 CEO라면 윤리경영과 사회책임의식도 갖겠지요.
이에 비해 대통령은 공공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모든 점에서 균형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업이 자유롭게 경쟁할수 있게 하면서도 경쟁에서 처진 국민을 도와줘야 합니다. 경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약자에 대해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CEO는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같은 여성 정치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박 전 대표는 대중성이 있습니다. 상당히 안정감이 있어요. 또 정치적 수업을 어려서부터 받아서 훈련된 리더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박 전 대표에 비해 본인의 장점은 무엇입니까.

“박 전 대표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입니다. 반면 저는 우리 사회의 많은 중산층과 서민들이 안고 있는 어려움과 고통, 애환을 함께 겪으면서 살아온 경험이 있습니다. 가상이 아니라 저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다음은 역사인식입니다. 권위주의 시대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루는데 제 몫을 했습니다. 국정운영에도 깊숙이 참여했고 그 과정에서 화합과 소통에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원칙과 소신을 어겨본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저에게 ‘부드러운 카리스마’,‘따뜻한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점을 인정해서겠지요. 대정부 질문에서 입증했듯이 저는 한나라당이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를 가할때도 늘 한나라당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참아야 할때는 참고 성실히 대안을 모색했습니다.역사속에서 고통받고 이겨낸 사람으로서 따뜻한 손을 내밀때 평가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싱글’ 대통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총리 재임중 보니 해외엔 결혼하지 않은 지도자들도 있더군요. 전 세계가 변하고 있습니다. (싱글대통령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문화적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박 전 대표와 대선에서 맞붙게 되면 자신 있나요.

=자신있게 해야죠. 비전을 내걸고 최선을 다해야죠. 다음 대통령은 아직 빈칸입니다. 내가 쓰고 싶다고 해서 쓰는 게 아니라 국민이 쓰는 겁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끝내 정치 참여를 포기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려는 지도자가 취할 행보로 ‘저울과 계산기는 버려라’는 등의 여섯가지를 강조했는데요.

“정 전 총장이 결단해서 함께 경선할수 있게 되기를 고대했습니다. 정 전 총장의 개인적인 고뇌에 대해선 백번 이해합니다. 이 결단이 정말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원칙에 저도 동의합니다. 역사적 과정에서 한 시기동안 나라의 최고책임자가 되겠다는 각오를 한다는 것은 개인의 계산 갖고는 안됩니다. 때론 손해를 보더라도, 이익 안 된다 해도 결단해서 갈수 있고, 머리에 손익계산기 두고 해선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때론 손해를 보고 불리할 수도 있지만,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발전을 기준으로 해서 자신을 던질수 있을때만 가능하다고 봅니다.”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의 출마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문사장 같은 신선하고, CEO로서 독특한 경험 갖고 어려움을 극복해서 좋은 회사 만들어낸 분들이 정치권에서 함께 일한다면 정치권에 맑은 물이 하나 생기는 것 아닌가 해서 같이 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분도 결단할 때까지 좀 고민을 하실 것 같습니다.”

-6월 정도에 한나라당에 맞설 제3세력을 구축하겠다고 하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탈당후 광주 강연 등 여러 행보를 하고 있는데 본인이 가졌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봐서 반갑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경선과정에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에 대해선 본인의 결단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큰 틀에서 보면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는 출마를 반대했다던데, 그렇습니까.

“남편은 ‘국정 경험도 많이 해보고, 정치권에도 있어봤으니 새로운 인생 살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유인했어요. 반대한 겁니다. 그러나 (저의 결정을)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나서는 격려도 많이 해줍니다. 특히 건강 챙기는 일을 열심히 해줍니다. 밤 11시든 12시에 들어가든 저를 이끌고 나가 한시간 동안 걷고 들어옵니다. 제가 주로 아침을 못 먹고 나가니까 조금이라도 먹고 가라고 아침도 챙겨 줘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고싶은 말씀은.

=우리 사회는 남을 격려하고, 좋은 것을 봐주는 ‘긍정의 힘’이 참 부족한 것 같습니다. 민주화과정에선 반대의 논리가 많이 나와서 민주화를 촉진시킨 측면이 있습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선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긍정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긍정의 힘을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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