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의 귀공자 농구의 길을 찾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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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16면

신인섭 기자 

우지원(34ㆍ프로농구 모비스)은 멀리서 보면 미니버스만 한, 덩치 큰 국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고 왔다. 출고한 지 3년 됐다는 그의 자동차는 순백색이었고, 티없이 깨끗했다. 뒷좌석에는 어린이를 위한 보조 시트가 달려 있었다.
“아내(이교영씨ㆍ29)가 좋아하고, 서윤이(5)를 태우고 다닐 때 편해요.”
시즌이 끝나도 바로 휴가가 시작되지는 않는다. 모비스 본사에 가서 보고를 하고, 소속팀의 연고지인 울산에 가서 각종 행사에 참여한다. 이달 말에나 제대로 된 휴가가 시작될 것이다.
“여행요? 안 갈 거예요. 꼼짝 않고 집에 붙어 있을 겁니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스타 후보선수

시즌을 시작할 때, 기자들이 목표를 물을 때마다 대답했다. “팀이 우승하면 좋겠고, 개인적으로는 식스맨(Sixth man)상을 받고 싶다”고. 앞의 말은 ‘진심’이었지만 뒤의 말은 아니었다. 대신 ‘진실’에 가까웠다. 우지원은 ‘식스맨’을 목표가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였다.

식스맨상의 진짜 이름은 ‘우수후보선수상’이다. 프로농구 원년인 1997년 모비스의 전신인 기아의 김유택이 이 상을 탔다. 상패를 받는 김유택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김유택은 프로가 출범하기 전, 농구대잔치 시절의 ‘전설’이다. ‘후보선수상’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농구는 수비와 체력, 그리고 빠르기의 농구다. 정통 슈터 우지원과 유 감독의 농구는 궁합이 썩 잘 맞지는 않는다. 우지원은 스타팅 멤버가 아닐 수도, 40분을 다 뛸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적응해야 했다.

우승은 달콤한 포도

우지원은 2006~07시즌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달랬다. “교체멤버면 어떠냐. 팀이 이기면 내가 이기는 거다. 힘겹게 40분을 다 뛰면 뭐하나. 30분이라도 알차게 뛰는 게 낫다”고. 이솝의 우화 ‘여우와 포도’를 연상케 한다. 여우는 빈 입으로 나무 그늘을 떠났지만 우지원은 챔피언 반지를 끼게 됐다.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승 한 번 못 해 보고 은퇴하면 누가 알아주겠나 싶어 속이 타기도 했죠.”

우지원은 7차전이 끝날 때 벤치에 있었다. 후배 선수들과 함께 수건을 흔들며 우승을 자축했다. 그의 얼굴은 환희로 가득했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에 우지원 정도 되는 스타를 벤치에 앉혀두는 건 예의가 아니다. 우지원은 상관없었다. 어디에서 맞든 우승은 우승이니까.

‘적’은 어디로 갔는가

우지원은 경복고등학교 2학년 때 청소년 대표선수가 되어 90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출전한다. 성인무대 데뷔는 92년 1월 10일 연세대 입학예정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기아와의 농구대잔치 경기였다. 이날 우지원은 15점을 넣으며 샛별로 떠올랐다.

이 무렵 연세대와 농구대잔치, 그리고 남자농구가 전성기를 구가한다. 93~94시즌 연세대는 문경은ㆍ이상민ㆍ서장훈ㆍ우지원 등을 앞세워 대학팀으로서는 처음으로 농구대잔치, 즉 성인무대를 제패했다. 기아ㆍ삼성ㆍ현대 등 실업팀을 모조리 쓰러뜨리고.

우지원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있다. ‘얼굴이 잘생겨 실력에 비해 인기가 많다’ ‘슛은 정확하지만 기술은 별 볼일 없다’ ‘이기적이다’….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시즌 정신 없이 뛰다 보니 잊어버렸다. 우지원 자신도, 막말을 하던 안티 팬들마저도.

코치가 되겠다

이제 우지원의 농구도 막바지에 왔다. “힘이 다할 때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지만 지금의 기량을 유지하면서 뛸 수 있는 시간은 3년 정도일 것이다. 그는 잘생겼고, 인기가 있다. 은퇴한 뒤에는 간간이 그를 유혹해온 연예계 진출도 생각해볼 만하지 않을까.

“아뇨, 코치가 될 겁니다. 농구를 떠나서 산다는 건 생각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우지원은 자신의 농구를 만들어준 코치 두 명을 꼽는다. 연세대 시절의 스승 최희암(전자랜드)과 유재학. 최희암은 우지원에게서 가장 비싸게 팔릴 재능을 개발했다. 슛이다. 유재학은 우지원의 재능을 무시했다. 대신 승리에 대한 갈증을 극대화해 결과적으로 우지원 농구를 활짝 피게 했다.

우지원에게 최희암과 유재학은 다른 종류의 지도자다. 그들을 통해 농구의 두 얼굴을 보았다. 그들을 통해 가고픈 길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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