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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 책임 안 지는 黨 누가 신뢰하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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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06면

신동연 기자 

“우리 국민은 부패에 대해 넌더리를 냅니다. 내 경험으로 보면 한국 정치는 부패의 너울을 뒤집어쓰게 되면 꼼짝없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3년 1개월 칩거 끝 말문 연 최병렬 前 한나라당 대표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골프 치는 것 외엔 별 약속이 없고, 세상사 다 초월한 것처럼 시종 미소를 지우지 않던 그였지만 한나라당의 부패 이야기가 나오자 신경이 곤두서는 듯했다.

최병렬(69) 전 한나라당 대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후 당 대표직을 내놓고 정치적 칩거에 들어갔던 그가 3년1개월여 만에 말문을 열었다. 그는 “봉합됐다고 하지만 한나라당은 위기상황”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그는 “당 수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라며 “차떼기 정당이란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대표를 새로 뽑는 것이 옳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3일 서울 압구정동 그의 자택에서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4ㆍ25 재ㆍ보선 이후 한나라당의 상황을어떻게 보십니까(전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강재섭 대표 체제 유지에 동의했다).

“좁은 시각에서 보면 그렇게라도 수습한 게 다행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아니지요. 한나라당의 절대 과제는 정권교체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악몽을 되살리게 하는 사건이 이번에 불거졌습니다. 이건 한나라당 집권 가도에 중대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했어야 했다는 말입니까.

“한나라당의 부패가 노출되고, 당대표의 지구당이 압수수색되고 있는 상황이니, 국민이 깊은 신뢰를 보내겠습니까. 그런 시각에서 보면 이번 수습은 잘못된 거지요. 굉장히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임시 전당대회를 잘 검토해서 당의 부패문제로 인해 새로 대표를 뽑는다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습니다. 그게 결국 선거운동 아닙니까. 부패문제에 대해 당이 책임을 통감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대통령 선거운동 아닙니까.”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봅니까.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뒤로 빠지고 오픈 프라이머리를 하면 누가 떠오를까요. 난 손학규 전 지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저쪽에선 한나라당을 부패한 정당으로 규정해 집중적으로 때릴 겁니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지방 선거 공천비리 실태를 공개하라고 법무부에 지시한 것을 보면 벌써 이런 움직임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만일 한나라당 후보가 부패와 연관돼 있으면 그런 공격이 상승작용이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검증도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부패를 정말 싫어합니다. 만일 우리가 다시 정권을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건 국민에 대한 죄악입니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한나라당은 부패척결을 내세웠는데도 왜 이렇게 부패사건이 잇따르는 겁니까.

“지난 대선 끝나고 대선자금 수사가 시작됐어요. 그때 ‘차떼기’가 터졌어요. 그러니까 30% 정도 하던 한나라당 지지도가 10%대로 뚝 떨어지더라고요. 그렇게 국민이 혐오스러워하는 것이 바로 부패요. 여러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문제가 된 사람들을 엄중하게 다루고, 당의 공천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어요. 지금 기초의원과 기초단체장을 전국적으로 공천하는데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퍼져 있어요. 자연히 유혹을 느끼겠지요. 그 와중에 (돈을) 받는 사람이 생긴다고 봅니다. 추측이지만 가히 틀리지 않을 겁니다. 국회의원과 시·도지사 외에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은 정당 공천을 하지 않는 방안을 연구해야 합니다.”

-대표 재임 시절 공천혁명을 내걸었는데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나는 그때 공천심사위원장이 중요하다고 봤지요. 그래서 첫 번째로 꼽은 사람이 박근혜 의원이었는데 당시 사무총장이던 이재오 의원이 박 의원은 안 된다고 펄펄 뛰고 난리가 났어요. 유신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있었는지 모르지요. 그래서 김문수 의원을 그 자리에 앉힌 겁니다. 그리고 김 의원에게 ‘공천권을 당신한테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내 집으로 찾아왔어요. 새벽 4시에도 왔고, 5시에도 왔어요. 나는 누구에게서도 종이 쪼가리 하나 받은 적 없어요. 확인해 보니 김문수 의원도 깨끗하게 합디다. 내가 사람을 보내봤어요. 많은 사람이 김 의원 집에 갔지만 대문을 들어선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아요.”

그는 고(故) 김윤환(아호 허주)의원의 얘기를 꺼냈다. “허주가 왜 죽었어요. 사람들은 이회창 총재 때 공천 탈락의 후유증으로 암이 생긴 것 아니냐고 했어요.”

그는 “그걸(공천 탈락이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알면서도 당시 한나라당으로선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살려낼 방법이 공천혁명 외엔 없었다”며 “공천권을 가진 사람이 비상한 각오로 대비하지 않으면 참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국민은 부패에 대해 넌더리를 낸다”며 비화 하나를 소개했다.

“내가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탄핵 이유였지만 사실 대표직 사퇴 결심을 굳힌 계기는 대선 자금과 관련된 문제에서 비롯됐습니다. 당시 삼성이 이회창 총재에게 무기명 채권으로 준 돈이 250억원인데 그중 205억원이 당에 들어왔어요.”

그는 “숫자는 정확히 얘기해야지” 하며 벌떡 일어나 자신의 서재 책상에서 검은색 수첩을 꺼냈다. 이야기가 계속됐다.

“그중 김영일 총장이 51억원을 환전해 쓰고 154억원이 남아 있었어요. 근데 그 돈이 다시 이 전 총재의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에게로 나갔어요. 정당에 들어온 돈은 선거가 끝났어도 정당에 남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걸 대검 중수부가 발표한다는 정보가 들어와요. 총선이 코앞인데 그걸 발표하게 되면 이 전 총재는 어떻게 되고 한나라당은 어떻게 됩니까. 차떼기에 못지않은 충격이 온다고 봤어요. 그래서 아무한테도 이야기 못하고 밤잠을 못 자고 고민했어요. 그래서 이 전 총재와 한나라당을 분리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관훈클럽 토론회에 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문안에 담았는데 마지막에 빠졌어요. 그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어요. 그러자 이 전 총재와 가까운 의원들과 공천 탈락이 확실시되는 사람들이 나보고 물러나라고 들고 일어났어요. 그래서 시골에 며칠 내려가 있었지요. 가서 보니 나에 대한 말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대표를 물러나겠다고 결심한 겁니다.”(※검찰은 17대 총선이 끝난 뒤인 2004년 5월 21일 수사발표에서 이 전 총재가 김영일 의원으로부터 대선자금 154억원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서정우 변호사에게 건네라는 지시를 했다고 발표했다. 이 돈 대부분은 서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던 중 대선자금 수사 시작 후 삼성 측에 반환됐다.)
그는 인터뷰 끝을 이렇게 맺었다.

“한국 정치현장에서 돈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겁니다. 바꿔 말하면 그게 부패입니다.”

“탄핵안 처리 불가능하다고 생각…여론 역풍 상상도 못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결국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최병렬을 정치적 유배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런데도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되레 “그때 탄핵됐으면 나라가 이 지경이 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적 곤경에 빠졌는데.

“탄핵하고 싶었지. 총선이 다가오는데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고, 그때 선관위도 경고했어요.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었어요. 탄핵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민주당도 우리와 생각이 같았고요.”

-탄핵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봤습니까.

“내심으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공천 탈락자가 내 기억에 15명이 넘어서던 때였어요. 그 사람들이 표결해 달라고 해도 나오겠어요? 더구나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발을 뺐어요. 그런데 표결 전날 노 대통령이 생방송 기자회견에서 형 건평씨에게 사장 유임 청탁을 했다고 언급한 대우건설의 남상국 사장이 자살을 했어요. 그러고 나니 공천 탈락자들이 공분을 느껴 다 나와주었어요. 자민련도 다 오고. 안 그랬으면 3분의 2 만들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남 사장의 자살이 없었으면 절대로 탄핵이 안 됐을 거예요.”

-여론의 역풍을 어느 정도 예상했습니까.

“상상도 못했지요. 방송과 좌파ㆍ시민단체들이 다 설치니까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그는 ‘beyond my imagination’이라고 했다). 훈련된 좌파들이 갖고 있는 운동력은 정말 어마어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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