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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범죄흔적은 과학수사에 걸린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호 05면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 민모(40)씨는 2004년 4월 서울교대 후문 앞 도로에서 승용차를 몰고 가다 오모(36ㆍ여)씨가 운전하던 승용차를 들이받아 전치 3주의 상처를 입히고 도주했다.

2000년 과학요원 전국 배치 ‘CSI 시대’ 열어 … 김승연 회장 사건 의혹 해결 나서

같은 회사 백모(40)씨가 거짓 진술해 대신 법정에 섰으나 재판 과정에서 거짓말이 탄로났다.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수상히 여긴 판사가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의뢰했고 사건 당일 백씨가 지방에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과학수사 기법으로 흔히 사용되는 것이 휴대전화 위치 추적과 통화내역 조회다. 휴대전화는 사용하지 않더라도 전원이 켜져 있으면 추적할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도 경찰은 한화 관계자가 청계산과 북창동 일대에서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컴퓨터 IP 추적도 수사에서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한다. 지난해 1월 대전지역 연쇄 성폭행 사건에서 경찰은 용의자가 인터넷 게임을 즐긴다는 점을 확인한 뒤 서울 천호동의 한 컴퓨터 게임방에서 게임에 접속한 사실을 포착해 ‘발바리’를 검거했다.

폐쇄회로TV(CC-TV) 영상분석 기법도 중요한 수사 방법이다. 이번 폭행 사건의 현장인 북창동 S클럽의 CC-TV 하드디스크는 100기가바이트(GB) 이상의 대용량이다. 하지만 영업시간인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10시간씩 작동하기 때문에 15일 정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디스크 용량이 다하면 새 영상이 덮어쓰기 형식으로 녹화되는데 사건 발생 50일이 지난 현재 여러 차례 영상이 덧씌워져 복구가 어려운 상태다. 2005년 7월 동해안 초소 사병의 무기를 뺏어 도망간 사건에서 군경 합동수사팀은 톨게이트 CC-TV 화면을 분석해 차량을 수배하고 톨게이트 통행권에 남은 지문을 감식해 범인을 검거했다.

또 다른 과학수사 기법은 화학분석법이다. 경찰은 김승연 회장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승용차 시트와 트렁크에서 흙 시료를 채취하고 나뭇가지와 씨앗을 확보했다. 압수품에 묻은 흙이 사건 현장의 토양과 동일한지, 나뭇가지가 청계산 수종(樹種)과 같은 것인지 가리기 위해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시료를 분석했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경찰은 수사가 난관에 부딪히자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하는 것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강제로 할 수 없고, 조사 결과도 법원에서 직접적인 증거로 인정되지 않고 보강 증거로만 채택된다는 한계가 있다.

거짓말 탐지기는 용의자가 거짓말하면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동공이 확대되고 얼굴이 붉어지거나 체온ㆍ혈압이 올라가는 신체적 변화를 체크하는 것이다. 지난해 7월 서울 잠실동 고시원 화재로 8명이 숨진 사건에서 경찰은 고시원 건물 지하 P노래방 업주 정모(52)씨를 상대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한 뒤 범행을 자백받았다.

이번 김 회장 보복폭행 사건 수사에는 활용되지 않지만 과학수사 기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DNA 분석을 통한 유전자 감식이다. 삼풍백화점 붕괴(1995), 화성씨랜드 화재(1999), 대구지하철 화재(2003) 등에서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최근 첨단 과학수사로 각광받는 것이 프로파일링(profiling) 기법이다. 범행 현장에 남겨진 흔적을 모아 범인의 취향ㆍ연령ㆍ성별ㆍ거주지 등을 추정하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서울 봉천동 세 자매 살인 사건과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에서 이 기법이 사건 해결에 한몫했다.

과학수사 요원 700명 활약 중

1955년 국과수가 창설되면서 과학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DNA 분석실은 화성 연쇄살인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 뒤 91년 8월에 만들어졌다.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97년 괌 KAL기 추락 사고 때 공동 조사한 미 육군 DNA 감식팀이 실력을 인정할 정도로 국과수의 감식 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서래마을 프랑스인 부부 영아 유기 사건 수사에서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국과수에는 연구직 150명을 포함해 270명이 근무하고 있다.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DNAㆍ지문 감식 등은 세계적 수준”이라며 “대형 사건을 겪으면서 현장 경험을 많이 한 것이 과학수사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수사 원년은 2000년이다. 전국 시도 경찰청에 과학수사계가 설치된 것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수사요원 7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그러나 초동수사를 담당하는 일선 경찰서에는 3~4명이 감식을 전담하고 장비도 부족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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