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복지’ 재원부담 건강보험에 떠넘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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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03면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 재원이 건강보험으로 떠넘겨질 전망이다. 지금은 국고에서 돈을 대고 있는데 감당하기 힘들 만큼 지출이 늘다 보니 건보 가입자에게 손을 벌리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험료를 올려 건강보험 가입자들이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차상위계층 의료급여 올 4500억, 갈수록 늘어 國庫 지원 한계

정부 고위 관계자는 5일 “차상위계층 의료급여 비용을 건강보험에 넘기기로 하고 보건복지부와 기획예산처 등 관련 부처가 구체적인 방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상위계층이란 월 소득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보다 약간 많은 120만~144만원(4인 가구 기준)인 저소득층을 말한다. 정부는 저소득층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2004년 차상위계층 중 희귀ㆍ난치 질환자와 만성병 환자, 2005년 12세 미만 아동, 2006년에는 18세 미만 청소년을 의료급여 대상자로 확대ㆍ적용했다. 이들은 모두 20여만 명으로 2004년 520억원이 들어갔으나 올해는 4500억원으로 늘었다. 이 돈을 건강보험이 떠안게 되면 보험료를 최소한 2~3% 올려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은 2005년부터 암ㆍ심장병 등 중병의 보장범위를 넓히면서 지난해 747억원의 적자를 냈고 이를 벌충하기 위해 올해 보험료를 6.5% 올렸다. 올 들어서도 1~3월 2408억원의 적자를 냈고 이대로 연말까지 가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4584억원의 적자를 낼 전망이다.

정부는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당초 약속한 대로 올해는 차상위계층 중 임산부, 내년에는 장애인을 의료급여 대상자로 추가할 예정이다.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차상위계층의 기준 등을 약간만 바꾸면 의료비 지원대상자가 크게 늘어나기 때문에 건보 재정 부담이 1조원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라면서 “의료급여 비용 부담을 건보에 넘기려면 가입자들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차상위계층 의료급여 대상자는 원래 건강보험 가입자였기 때문에 종전대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다만 이들의 의료비를 한꺼번에 건강보험이 부담하면 재정이 악영향을 받기 때문에 몇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차상위계층 의료급여를 건강보험에 넘기더라도 환자가 내는 본인부담금은 지금처럼 국고에서 계속 지원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입원진료비 본인부담금은 건강보험이 5%포인트 더 높은데 이를 정부가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 부담은 지금과 달라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건강보험료 지원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차상위계층이 지금처럼 의료급여 대상자로 있을 때는 보험료를 안 내도 되지만 건강보험으로 넘어가면 보험료를 내야 한다. 이들이 보험료를 못 낼 가능성이 크고 3개월 이상 체납하면 병원 이용을 제한받기 때문에 의료 사각지대에 빠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정책이 ‘복지정책의 후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의료급여는 기초 수급자와 일부 차상위계층의 의료비를 정부에서 대주는 제도다.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절반가량은 의료비가 면제되고 나머지는 15%를 부담한다. 자기 부담이 거의 없다 보니 의료 이용이 급증해 예산이 2001년 2조947억원에서 올해는 4조6753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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