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군복입고 나서는 일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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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군의 해외파견을 합법화하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안」이 주변국들의 우려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5일 새벽 일본 참의원 특위에서 전격 통과됐다. 특위에서 수정된 이 법률안은 곧 참의원 본회의 의결을 거쳐 다시 중의원에 넘겨질 예정이다.
일본의 제1야당인 사회당과 공산당 등 좌파정당들이 반대하고 있으나 자민·공명·민사 등 우파 온건정당들이 공동수정한 이 법안의 확정은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 법이 확정되면 일본은 2차대전 패배이후의 이른바 평화헌법에 의한 국제적 연금상태에서 벗어나 군사력의 해외진출 길이 트이게 된다.
PKO법안은 유엔이라는 국제평화기구 안에서의 파병,부대단위 파병의 경우 별도의 의회승인 필요,파병부대 임무의 후방지원으로의 제한 등 조심스럽고 유보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이 법안은 여러가지 부정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아무리 제한적·유보적인 조항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은 일본의 대외침략과 전쟁도발의 첨병이었고 외국인 학살의 주범이었던 일본군 후예의 해외파병의 길을 여는 장치라는 점은 명백하다.
더구나 지금은 자유세계의 가상적국이었던 소련이 해체되고 양대진영에 의한 전후질서가 붕괴되어 새로운 국제질서가 형성되려는 과도기다. 이럴 때 돈을 확보한 일본이 다시 칼을 가지고 세계신질서 형성에 참여한다는 것은 군국일본의 피해자였던 동아시아 주변국가들에 새로운 긴장과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PKO법안의 처리 자체에도 문제는 있다. 그것은 일본헌법의 위반이라는 논란에 더해 비상정적인 방법으로 강행통과되고 있는 점이다.
일본의 국군인 자위대의 창설 자체가 헌법위반이라는 논란이 있어 왔다. 이 논쟁은 아직도 일본사회에서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이런 자위대에 해외파병까지 허용하는 PKO법안에 대해선 위헌론이 더욱 강하게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최근 아사히신문이 일본의 헌법학자를 상대로 실시한 앙케트에서 80%이상이 위헌이란 대답을 했다.
이런 법안을 처리하면서 자민당은 야당의 반대를 뿌리치고 지난해 12월 중의원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키고,이번에도 수정안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새벽시간에 강행처리했다. 그것은 마치 진주만기습을 연상시키는 방식이다.
아직 일본은 과거 주변국가들에 범한 죄과를 말끔히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군사력을 강화하고 해외파병을 시도한다는 것은 주변국들에 과거의 악몽을 다시 불러 일으킬 뿐이다. 일본정부는 다수의 국민과 야당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국가들이 PKO법안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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