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진화론' 무대였던 갈라파고스 '염소와의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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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정립한 곳으로 유명한 태평양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염소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2일 소개했다. 토착 동물이 아닌 염소가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약 200년 전의 일이다.

에콰도르에서 1000km 떨어진 갈라파고스 군도를 기지로 삼았던 포경선 선원들이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들여온 것이다. 문제는 외래종인 염소의 수가 최근 14만 마리 이상으로 급격히 불어났다는 것이다.

공원 당국 등은 염소들이 선인장 등 섬에 자생하는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면서 생태계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봤다. 염소떼가 먹이를 싹쓸이하는 바람에 희귀종인 토착 거북이 등이 제대로 먹지 못해 멸종 위기에까지 처하게 됐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찰스 다윈 재단'과 공원 당국 등은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염소 소탕 작전을 펴고 있다. 이 작전에는 개인 기부자들과 유엔 등이 내놓은 1000만 달러(약 98억원)에 이르는 자금이 투입됐다. 소총과 망원조준기, 헬리콥터, 뉴질랜드에서 수입해온 사냥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 첨단 장비까지 동원되고 있다. 숨어 있는 수컷 염소들을 찾아내기 위해 생식 능력을 없앤 암컷 염소까지 내세우고 있다. 이 작전으로 현재까지 염소 수만 마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환경운동가와 염소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온 주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미국 메릴랜드대학의 자연자원관리 전문가 로버트 넬슨은 "갈라파고스의 자연환경은 이미 사람들의 행위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다"며 "최근의 소탕작전은 원래 생태계를 복원하려 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인위적인 '디즈니랜드'를 만들려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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