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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보 학부모에 줘야" "대학부터 단계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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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수능성적·학업성취도 등 교육정보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논란의 해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격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조전혁 인천대 교수,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 강치원 강원대 교수, 박경재 교육부 정책홍보관리실장, 엄기형 한국교원대 교수. [사진=조용철 기자]

초.중.고교는 학업성취도 등 15가지 정보를, 대학은 졸업생 취업률 등 13가지 정보를 매년 한 차례씩 공개토록 한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특별법안'이 4월 30일 국회를 통과했다. 같은 달 27일에는 서울고법이 "수능성적 원데이터와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교 간, 지역 간 실력 차이 등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게 됐다"며 환영한다.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 서열화가 우려된다"며 공개 범위를 축소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 정보 공개의 범위는 어디까지가 합당한가. 논란의 해법을 찾기 위해 교육부 박경재 정책홍보관리실장과 특별법을 발의한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 정보 공개 소송을 낸 조전혁 인천대 교수, 교육정책 전문가인 엄기형 한국교원대 교수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머리를 맞댔다.

▶강치원=수능 원데이터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하라는 서울고법의 판결에 이어 교육정보 공개 특례법이 통과됐다. 어떤 의미가 있나.

▶이주호=이 법의 취지는 학력 정보뿐 아니라 초.중등 교육의 급식, 안전, 학교 폭력, 보건, 교사 등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성적만 궁금한 것이 아니다. 단순한 정보 공개가 아니라 공시다. 학교 간 비교가 가능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동안 교육 문제가 안 풀린 것은 정보 부족으로 문제 파악조차 안 됐기 때문이다. 학부모들도 막연한 정보만으로 학교 개혁을 위해 참여할 수 있는 폭이 제한적이었다. 수요자 참여와 전문가 개입을 통한 교육 개혁의 기반이 생겼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전혁=학생.학부모가 알고자 하는 모든 교육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비 부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사교육과 조기 유학 등을 포함하면 국내총생산(GDP)의 12~15%에 이른다. 그런데도 국민의 교육 만족도는 매우 낮다. 학생과 학부모는 정보 접근에서 소외돼 왔다. 학교 간, 지역 간 학력 격차는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드러내 놓고 어떻게 고칠지를 생각해야 한다.

▶박경재=수요자 중심의 교육 정보 제공은 많은 진전이 있었다. 필요한 정보는 교육정보시스템(NEIS)에 등록돼 있다. 급식.보건 문제를 비롯해 교수 학습과 관련된 사항은 학부모와 교사가 필요에 따라 찾아보면 된다. 개인정보 가운데는 공개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보호해야 할 게 있다. 학업성취도가 가장 큰 문제다. 공개 효과와 부작용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대학 정보부터 공개하고 효과를 봐 가며 초.중등 교육 정보 공개를 논의해 가자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엄기형=개방과 공개는 시대적 추세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대상의 특수성과 한국 교육의 특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학의 정보 공개는 대학교육공시제가 시행 중이어서 큰 문제는 안 된다. 초.중등 교육, 이른바 공교육이 문제다. 정보 공개가 문화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도 단계적 접근이 필수다.

▶강치원=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가.

▶이주호=이미 많은 정보를 공개했다는 교육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매우 불충분하다. 어떤 학교의 학교 폭력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없지 않으냐. 단순 공개가 아닌 공시가 그래서 필요하다. 개인 정보 유출 우려를 말하는데 공개하자는 것은 개별 학생의 정보가 아니라 학교의 정보다. 학부모들이 여러 학교의 다양한 정보를 비교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교육부가 시행령 제정 때 수능 정보는 공개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한 것은 법률의 취지를 훼손하려는 의도다.

▶조전혁=수능 성적 등 학부모들이 알고 싶어 하는 많은 정보가 모두 제공돼야 한다. 학교가 관청화되고 교사가 관료화됐다는 지적이 많다. 교사 임용고시가 치열해진 것은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다. 소위 '철밥통'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다양한 정보가 공개되면 학교와 교사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

▶박경재=고등교육기관부터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대학 평가를 거부하는 대학들을 지적한 것이다. 초.중.고교 중에서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쉬쉬하는 학교가 있고, 교사들이 관료화됐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특례법이 요구하는 공개 범위에 수능 성적과 학업성취도가 포함돼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다만 공개 수준과 방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돼 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 갈 것이다.

▶엄기형=학부모를 교육의 중요한 주체로 보는 시각은 꼭 맞는 것은 아니다. 학부모는 후원적 주체일 뿐이다. 학부모가 교육 정보를 많이 알아야 하지만 모든 것을 다 알아야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정보 공개도 중요하지만 정보 보호도 필요하다. 어느 학교인지를 알 수 있는 형태의 정보는 제공해서는 안 된다.

▶강치원=교육부는 상고하겠다고 했다.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박경재=법원의 판결은 교육 관련 정보 중 학생.교사.학부모의 신상에 대한 내용을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하다. 수능도 학교별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했는데 학교명을 명시하라는 것인지 아닌지 불명확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도 연구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때 학교명은 익명 처리한다. 시행령 제정 때 이런 부분을 집중 논의하겠다.

▶이주호=서열화를 걱정하는데 서열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다만 차이를 드러낼 수 없는 획일적 서열화가 문제다. 정보를 은폐하면 오히려 학부모들의 관심은 성적으로만 몰린다. 다양한 정보를 동시에 공개하면 다양한 잣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투명한 정보 공개는 서열화를 부추기기보다 획일적인 서열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엄기형=정보를 공개하면 서열이 파괴된다는 것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이미 알려진 정보만으로 학부모들은 입소문을 통해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 그것만으로 이미 고정 서열제가 형성돼 있지 않나. 연구자에 대한 정보 제공도 무턱대고 다 줄 것이 아니라 적정한 수준을 협의할 중간 단계가 필요하다.

▶강치원=평준화의 틀이 깨진다는 논란이 있다.

▶조전혁=획일적 평준화에 반대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소송을 제기했던 것은 평준화 폐지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은 아니다. 학교가 열심히 가르치는 방향으로 변하도록 유인을 제공하려는 목적이 전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교육은 학생들만 힘겹게 경쟁시켰다. 이제 경쟁을 학교와 교사에게 돌리자는 것이다.

▶이주호=지금 강남의 엄마들이 사교육 정보를 어디서 구하나. 학원에서 돈을 주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입시 정보를 포함한 모든 정보를 사교육기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모든 정보를 교육청 홈페이지만 열어도 알 수 있게 된다면 정보 불평등도 해소되고 사교육비도 절감된다. 평준화 틀과는 관계없다.

▶박경재=공개될 정보는 학교장의 교육 철학, 학교 폭력, 급식, 안전 문제 등이 망라된다. 전인.인성교육 경쟁 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 다만 이 학교에 몇 점 이상의 학생이 몇 명이다 식의 정보는 문제가 있다.

▶강치원=대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가.

▶이주호=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하고 그것을 인정받아 대학에 진학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려면 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여야 한다. 3불의 고교등급제가 여기에 걸리는 문제다. 대학들이 각 고교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어야 학생부를 반영할 근거가 생긴다. 고교등급제 금지는 현재 이런 학교 간 차이를 드러내는 모든 길을 막고 있다. 학교 간 차이를 대학들이 자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길을 터 줘야 학생부 반영 비율이 높아진다.

▶박경재=정보 공개 문제를 대입과 연관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대입제도를 바꾸려면 3년의 기간은 있어야 한다. 지금 바로 연결시키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불안감을 준다. 대학이 고교에 대한 정보는 공시를 통해 얻고, 학생 개인 정보는 학생부를 통해 얻어 원하는 학생을 뽑을 수 있게 될 것이다. 현재 일부 대학이 주장하는 고교등급제는 전년도에 그 고교에서 합격한 학생들의 성적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지원자 입장에선 부당한 연좌제다. 학교 간 다양한 질적 차이를 고려해 뽑기 시작하면 고교등급제 논란은 자연히 사라진다.

▶조전혁=고교등급제는 실시해도 차별이고 안 해도 차별이다. 현행 대입은 학생이 대학에 왜 붙었느냐 떨어졌느냐 하는 게 성적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이 문제다. 질적인 면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 선발 자율권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다.

정리=임장혁 기자<jhim@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학교 정보 공개 왜 논란

교육정보 공개가 쟁점이 된 것은 관련 법안 입법과 사법부 판결이 계기가 됐다. 초.중.고교의 학업성취도와 수능 데이터 등이 공개되면 학교.지역 간 실력 차이가 드러나게 돼 고교등급제를 금지하고 있는 3불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교육정보 공개법=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이다. 내년부터 초.중.고교 학생들의 성적 등 학력 정보나 졸업생의 상급 학교 진학률 등을 연간 한 차례씩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에는 "교육 관련 기관(교육부.교육과정평가원.교육개발원 등)의 장은 학술연구의 진흥과 교육정책 개발을 위해 해당 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자료를 대통령령으로 정해 연구자 등에게 제공하라"고 명시돼 있다. 공개 자료는 수능,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수능 모의고사, 고교 학력평가, 학교 만족도 조사 등이 망라돼 있다. 또 ▶교육과정 운영▶학교 급식▶학교 폭력▶학교 운영 전반 등에 대한 내용도 공개하도록 돼 있다.

◆법원 판결=서울고법 특별2부는 4월 27일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 수학능력시험의 원데이터와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조전혁 인천대 교수 등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소송(정보 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의 항소심 재판에서다. 지난해 9월 "수능시험 원데이터만 공개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던 1심보다 공개 범위를 넓힌 것이다. 교육부는"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