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에 등돌린 전국구의원/오병상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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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깨끗한 정치를 찾아」 민주당을 버리고 국민당에 입당했던 조윤형의원이 14대 의원임기가 시작되는 첫날인 30일 탈당성명을 발표했다. 3개월만에 두번의 탈당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14대의원」이라는 금배지를 얻었다. 묘한 것은 두차례 탈당의 변이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유는 『측근정치가 발호해 당내 민주화가 되지 않았기에 구국의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국민당 탈당성명도 비슷하게 『측근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결정 등 사당화를 가속해왔기에 정치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탈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번의 탈당은 성격이 전혀 판이하다.
첫번째 탈당은 지역구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이 마감되는 시점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두번째 탈당은 전국구의원으로서 의정활동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이루어졌다.
지역구와 전국구의원의 정치적 의미는 같은 금배지지만 유권자가 직접 뽑았느냐,당이 임명했느냐는 큰 차이가 있다. 통계적으로 볼때 유권자들은 지역구의원을 뽑을때 후보개인의 지명도 50%,소속당 50% 정도를 보고 투표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적어도 지역구의원은 당선이유중 50% 정도는 자기가 잘 나 금배지를 달았으므로 지역주민의 의사를 대변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전국구의원은 전적으로 당에서 임명한 사람이다. 1백% 당에 예속된다는 의미며,비록 국민의 간접적 지지를 받아 금배지를 달았지만 당연히 당에 대한 충성이 앞서야 한다. 당을 떠난 지역구의원은 있을 수 있어도 전국구의원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전국구의원인 조 의원은 이같은 잣대에서 보면 당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다. 적어도 도덕적으로 볼때 당을 떠난다는 것은 곧 의원직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행법은 원론에 어긋나게도 전국구의원이 탈당하더라도 의원지위는 그대로 보장해주는 허점을 가지고 있다. 조 의원은 법의 허점을 활용했으며 그를 강제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정치도의」라는 명분을 지적해 봤자 뻔뻔한 사람을 붙들어 맬 수는 없다. 유일한 대안은 법을 고치자고 주장하는 길밖에 없다.
의정활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탈당한 점도 문제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념과 정치철학을 펼쳐보지도 않고 미리 『나의 정치철학과 맞지 않는다』고 예단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더욱이 조 의원은 당무운영에 대한 불만을 정식으로 당에 토로하지 않고 두문불출하고 있다가 서둘러 미국으로 떠나면서 비서에게 『내가 떠난 다음날 탈당성명을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공인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조 의원뿐 아니라 국회의원이 개원국회가 열리기도 전에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합집산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한 정치학교수는 『그러자면 굳이 따르지도 않을 민의를 묻는 총선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한탄한다.
원론이 맞지않는 우리 정치현실이고 법마저 허점투성이기에 엄정한 정치도의를 잣대로 삼아 정치인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국민의 눈이 더욱 밝아야할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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