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사 사무실이 범죄 “연결고리”/유령회사 사기 어떻게 이뤄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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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회사 설립제도 허점이용 중기 희생물로
29일 검찰에 적발된 유령회사 어음사기사건은 현대경제의 근간이 되는 주식회사제도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악성 경제범죄다.
더욱이 주식회사의 설립관계 서류신고를 대행해 주는 법무사사무실이브로커 역할을 하며 조직적으로 범죄꾼들과 밀착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충격이 크다.
이같은 신종범죄는 80년대부터 등장했으나 제도적 방지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동일한 범죄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형편이다.
범인들이 사용한 수법은 간단하다.
일단 법무사 사무실을 찾아가 등록세 1백만원,수수료 30만원,선이자 30만원 등 1백80만원만 주면 브로커인 법무사 사무장들이 평소 채권매매중개 등으로 안면이 있는 사채업자들에게 선을 대준다.
사기범들이 사채업자들로부터 5천만∼1억원씩을 빌려 은행에 납입하고 발기인을 허위로 기재해 서류를 넘겨주면 법무사 사무장들은 곧바로 상업등기소에서 법인설립을 받아주게 된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2백만원 내외의 돈으로 1시간만에 유령회사 하나가 설립되는 것이다.
사채업자들은 일단 회사가 설립되면 다음날 바로 빌려준 돈을 찾아가버려 회사는 이름만 있는,말 그대로 유령회사가 돼버리지만 현재까지는 은행측이 이를 막을 아무런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사채업자들은 1억원을 하룻동안 빌려준 댓가로 30여만원의 이자를 받기때문에 한달이면 1천여만원을 간단히 챙길 수 있게된다. 검찰은 서울에서만 사채업자 등을 통해 동원되는 1년간 주금(주식회사 설립자본금) 대납액수가 5천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령회사를 차리고 나면 사기범들은 은행과 1개월 거래실적이 4억5천만원이상이면 당좌개설이 가능한 점을 이용,다시 사채업자들에게돈을 빌려 거래를 개설하고 일단 백지어음과 수표를 받게되면 멋대로 금액을 써넣은뒤 주로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현금할인을 하거나 어음 자체를 팔아먹는 수법으로 거액을 챙기는 것이다.
검찰 조사결과 일부 사채업자들은 자신들의 자금동원력을 이용,은행과 정기거래를 하면서 1백만원씩을 받고 당좌거래 계좌자체를 판매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같은 범죄가 해가 갈수록 만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부터 금년 5월까지 서울시내에서 1억원이상의 부도를 낸 업체는 무려 6백40여개다. 검찰은 이중 법인설립일로부터 1년이내 부도를 낸 96개 업체는 대부분 이같은 유령회사 사기와 관련돼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검찰이 유령회사설립 수사에 나선 이달초부터 하루 50∼60건에 달해던 법인 설립·증자신청건수가 절반이하로 격감했다는 사실은 이같은 범죄가 얼마나 만연돼 있는지를 암시하는 반증이다.
가뜩이나 중소기업들의 연쇄도산 등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서 신용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건전한 기업풍토를 좀먹는 이같은 악성범죄에 대한 대책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김종혁·최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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