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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심사숙고… 판이한 양김/3자 탐구/3당 대선후보의 정치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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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뛰어난 감각으로 이슈 만들며 장애돌파 YS/끝없이 확인하고 항상 「최악의 경우」 준비 DJ/직관과 추진력으로 몸에 밴 승부수 구사 CY
민자·민주·국민당의 김영삼·김대중·정주영 대통령후보 3인은 모두 민간인 출신이면서도 정치스타일과 개성이 판이하다.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온 당·비서실운영 및 난국타개방식 등 정치행태를 비교·분석해보면 그들이 집권했을 때 통치스타일이 어떻겠느냐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두 김씨는 30여년동안 숙명적 동지이자,경쟁자의 관계로 피차 상대방의 스타일과 의도를 누구보다 잘 꿰뚫는다.
반면 정주영씨는 재벌총수로서 정치에 입문한지 6개월도 되지않아 정치스타일을 알아 맞히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 다만 기업경영스타일과 일천한 당운영방식으로 미뤄 짐작할 수 밖에 없다.
두 김씨는 사석에서 곧잘 상대방의 정치행태를 평가·분석하는 얘기를 한다.
김대중씨는 『YS(김영삼후보)는 매사에 턱없이 낙관적이어서 때로는 부럽기도 하지만 아슬아슬하기도 하다』고 평한다. YS는 무슨 일을 밀고 가다가 꺾이면 적당한 구실을 붙여 물러서고는 바로 다음날부터 그일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는 것이다.
김대중씨는 그러면서 『나는 YS에 비해 매사에 너무 많이 생각한다』고 자평한다.
이에 비해 김영삼씨는 『DJ(김대중후보)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만사를 꼬이게 하고 어렵게 풀어간다』며 『세상 일은 크게 줄기만 잡으면 단순하게 보는 것이 옳은 판단일때가 더 많다』고 주장한다. DJ는 괜히 쉬운 일도 어렵게 풀어가더라는 것이다.
김영삼씨가 『나무에 집착하면 숲이 안보인다』는 정치철학을 가졌다면 김대중씨는 『나무를 알지 않고는 숲을 정확히 볼 수 없다』는 논리를 갖고 있다. 그만큼 둘의 정치스타일은 이따금 극단적일 정도로 대조적이다.
지난 87년 직선제개헌투쟁 당시 YS의 1천만서명운동 제의에 DJ는 『현실성이 없다』며 서명규모를 축소하자고 했으나 YS는 『누가 그 숫자를 헤아려 보겠느냐』고 고집,관철시켰다. DJ가 단계적 절차를 밟아가는 유형인데 비해 YS는 과정을 뛰어넘어 바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유형임을 보여주는 실례다.
김영삼씨는 3당통합후 끊임없는 풍파속에서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낙관적이었다고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14대총선 책임문제를 놓고 노태우대통령과 YS의 사이가 벌어졌던 지난 4월초 박태준최고위원이 당내 대통령후보경선에 출마준비를 하자 민주계의원 및 사무처요원들이 이에 반발,탈당서명작업까지 벌였다. 이때 김 후보는 『걱정말라』며 박 위원이 안되는 이유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5·16세력에 그 용모·어투로는 유권자의 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경선과정에서 이종찬후보쪽에 민정계중진들이 많이 모인 것을 참모진에서 우려하자 『경선에서 이기면 다 돌아오게 돼있으니 신경쓸 것 없다』고 일갈했다.
그만큼 정치적 감각이 뛰어나고 잔가지는 무시해버리는 스타일이다.
김대중씨는 모든 사안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확인하면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2선을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지난 85년 2·12총선을 앞둔 미국망명시절,자신의 추종세력을 당시 제1야당이던 민한당과 민추협(신당창당결성모체)에 분산시켜 어느쪽의 득세에도 타격을 받지 않도록 치밀한 대비를 했다. 반면 김영삼씨는 추종세력을 몽땅 신당에 투입했을 뿐 아니라 일부 민한당의원을 탈당시켜 판세를 뒤흔들었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는 김대중씨의 스타일은 투옥과 수난의 정치역정을 겪었던 그의 개인적 경험과 무관하지 않은듯 하다.
자신의 손으로 현대그룹을 일으킨 정 후보는 자신의 오랜 기업경영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관력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정 후보는 『기업오너는 회사일에 누구보다 가장 많이 생각하고 노력하기 때문에 그의 판단·소신이 옳을때가 훨씬 많다』는 신념을 갖고있다. 때문에 당운영에서도 밑의 사람의 「시시한 의견」은 아예 묵살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가는 타입이다.
최근 불화설·탈당설이 잇따르고 있는 모의원의 경우 정 후보가 불성싱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 아예 상대를 안해주는데서 적지않은 소외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곤경을 벗어나는 방식도 3자 모두 다르다.
김영삼후보는 「벼랑끝 정치」「감의 정치」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공격목표를 설정하면 한 곳에 힘을 집중해 뚫고 나간다. 웬만한 장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또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을 참지못하며 스스로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 시선을 끌어들인다.
90년 10월 내각제 각서파동과 91년 8월 제주파동은 자신을 배제하려는 여권내 움직임에 대항해 탈당불사의 배수진을 치고 노 대통령의 퇴임후를 위협,승리를 이끌어낸 대표적 사례다. 멀리는 70년대초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던 때로부터 83년 정치규제시절 단식투쟁을 거쳐 민추협결성·신당창당 및 3당통합결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정치적 사건을 만들어왔다.
김대중후보는 어려움에 부닥치면 치밀한 사고를 통해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스타일이다. DJ 역시 일단 목표를 정하면 남의 시선을 별로 의식하지않고 몰아붙인다.
YS가 책보다는 학자들을 많이 만나 귀동냥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인물이라면 DJ는 매일 아침 30분씩은 독서를 하며 모든 현안에 대해 독보적인 식견을 갖출 정도로 깊이 파고든다. DJ는 영화를 본뒤 평론을 할 수 있으며 국사지식도 전문가를 뺨칠 정도다.
정씨는 현대그룹의 중추기업이 조선과 건설업체인데서 알 수 있듯 계획생산에 의한 판매보다는 경쟁입찰과 무모할 정도의 승부수를 띄우는 것이 몸에 밴 인물이다.
텅빈 모래사장에 말뚝만 박아놓고 현대중공업 건립차관을 받아낸 일화나 아산만 간척사업시 폐선을 물막이용으로 바다에 가라앉힌 파격적인 공법의 제시 등은 정 후보의 강점인 직관력과 휘몰아치는 추진력을 잘 대변한다.
대화방식은 전혀 딴판이다.
김영삼후보는 『5분이상 논리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화제를 끌고가는 힘이 약하다는 평과 『상대방의 경계심을 무장해제시켜 좋은 의견을 끌어내는 덕장』이란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김대중후보는 토론을 즐기고 탁월한 식견과 논리로 상대방을 압도,설득하는 유형이다.
지난해 10월 야권통합직후 대정부질문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치·경제·국방·외교·교육·여성문제 등에 핵심을 찌르는 DJ의 「강의」를 들은 소장파이론가들인 이철·노무현의원 등이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다. 정 후보는 자신의 독특한 경험에 바탕을 둔 다변형으로 말솜씨가 뛰어난 것은 아닌데도 나열하는 단어만 듣고 있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설득력있게 말하는 묘한 화술을 갖고 있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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