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먹고싶은 음식 말하면 재료응답 술술 컴퓨터가 요리 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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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인간은「미래의 동물」이다. 지난날에 연연하거나, 오늘에 안주하는 것보다 내일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보다 가치있는 삶으로 평가하는 것도 그래서다. 달라지는 미래를 예측해보고 이를 준비해 나가는 것이 바로「오늘」에 주어진 과제다.
앞으로 8년 후, 서기2000년은 시작된다. 우리나라도 제7차 경제개발5개년 계획이 끝나는 96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생활의 풍요」로 대변되는 후기산업사회의 특성이 2000년에는 더욱 극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빈곤으로부터 해방돼 생활의 여유를 즐기며 최첨단기술이 쏟아내는 갖가지 문명의 이기들을 극대로 활용하는 한편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데 힘쓰게 될 것이라고 관계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첨단기술에 둘러싸인 채 휴매니티를 갈망하며 자아실현을 위해 애쓰는 한국가정의 내부를 13회에 걸쳐 분야별로 미리 점검해본다. <편집자주>
2000년5월27일 오후3시30분.
주부 K씨의 팔목시계가 말하기 시작했다. 『슈퍼에 식품을 주문할 시간입니다』오후의 피로가 조용히 엄습해와 나른해진 몸을 소파에 기대고 있던 K씨는 정신을 추스리며 단추를 눌러 컴퓨터를 켰다. CD가 장착된 컴퓨터는 세계요리 편을 화면에 비추었다. K씨는 화면에 중국요리와 서양요리가 나타나자 잠시 생각하다가 『중국요리로』라고 말했다.
음성인식기능을 가진 컴퓨터는 곧 응답했다. 『네, 오늘은 초여름 별미로 돼지고기 브로콜리찜으로 하겠습니다. 재료는 돼지고기 살코기로 다진 것 1백50g, 고기양념으로 소금⅓작은 술·정종½작은 술·녹말1작은 술·계란⅓개·후추약간이 필요합니다. 브로콜리 1묶음, 야채양념으로 소금½술·정종1큰 술·후추약간·수프 반컵·계란3개·육수1과½컵이 필요합니다.』
K씨는 여기까지 듣고 나서 곁에 놓인 화상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인근 슈퍼점원이 화면에비치자 K씨는 3인분 재료 배달을 부탁했다.
슈퍼에서는 오전10시와 오후4시에 각 가정에 배달해주는 일종의 도어 투 도어 서비스인 쿠리에 서비스를 해주므로 일일이 장에 가는 번거로움은 없어진지 이미 오래다. 이 정규배달시간 외에는 배달 주문시 따로 배달료를 물어야한다. K씨는 새삼 말하는 손목시계에 고마움을 느꼈다.
제시간에 맞춰 배달된 재료를 건네 받은 K씨는 컴퓨터가 일러주는 대로 조리를 시작했다.
김정흠 교수(고려대·물리학)는 『미래의 식사는 가장 호화스러운 것이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요리라 해도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훌륭히 조리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이라고 해서 별천지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80년대 중반 21세기를 예측하기 시작했을 때 모든 집안 일을 로봇이 대신할 것이라는 공상과학 만화식의 추측이 무성했었다. 그러나 8년을 앞둔 지금 이는 다만 공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려면 첫째 기능상 너무나 복잡해질 뿐 아니라, 사람일을 기계가 대신한다고 할 경우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차원에서 80년대 중반 미래 생활의 하나로 전망됐던 전자신문 역시 실용화되지 못 할 것으로 김 교수는 보고 있다. 신문을 읽는 독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일람성이다. 20여 페이지를 넘는 신문을 읽기 위해 독자들은 첫 장 또는 마지막장부터 차례로 제목 등 훑어 나간다. 그러다가 관심이 가는 기사를 발견하면 비로소 정독에 들어간다. 전자신문은 각각의 기사를 보여줄 수는 있으나 이를 한눈에 보게 하는 일람성의 결여로 실용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62년 현재 그다지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는 홈뱅킹·홈쇼핑을 비롯한 가정 자동화 시스팀들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대대적인 발전을 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보고있다.
안방에서 은행에 예금을 하고 잔액을 조회하며 각종 공과금의 납부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이른바 자택은행은 현재 수준에서는 자금이체라든가 신용장 개설 등의 업무도 집에서 하기가 불가능한 극치 초보적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또 백화점에 진열돼 있는 상품들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주문하고 은행구좌와 연결해 값을 치를 수 있는 홈쇼핑도 90년 신세계백화점이 처음 실시했으나 이용도가 낮아 올해 시스팀 자체를 취소시켰다. 그러나 이런 자동화 시스팀들은 2000년에는 완전히 정착돼 일상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2000년에는 비록 공상적인 수준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생활이 바뀌는 것은 틀림없다.
세트로 판매되는 음식 재료, 가정마다 보급돼 있는 전자레인지는 요리가 주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게 될 것이다 .
뿐만 아니다. 1회용 그릇의 보편화는 주부로 하여금 설거지로부터 행방을 가져다 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엌의 구조는 현재와는 전혀 달라 벽면 한쪽에 종이접시가 차례로 쌓여 있어 필요한 만큼 꺼내 쓰고 나면 자동적으로 아래로 채워지게 된다. 또 가정마다 플래스틱 그릇 성형기가 있어 컵·접시등 그때그때 사용 목적에 따라 직접 만들어 사용하게끔 된다.
이렇게 사용된 그릇은 곧장 쓰레기로 처리돼 분리 수거된 다음 종이는 폐지공장으로, 플래스틱은 재생공장으로 넘겨져 플래스틱 가루로 재활용됨으로써 쓰레기 생산도 억제하게 된다. 따라서 2000년의 주부들은 그릇을 사는 것이 아니라 플래스틱 가루를 사러 다니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그릇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시대에 따른 노스탤지아는 사람들을 보다 정서적인 생활에 매달리게 한다. 손으로 빚은 도자기 그릇이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거래되며, 생일을 맞은 가족들에게 기념선물로 선사될 것이다.
생활의 편이를 가져다주는 첨단기기 시설들은 지금보다 비교가 안되게 빠른 속도로 보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가구당 농가문화용품보급을 보면 85년 28·5%이던 컬러 TV가 89년 83·5%, 91년에는 1백%를 넘어섰다. 세탁기도 85년 6·5%에서 89년 26·7%, 91년 46·8%로 급격히 늘고 있다. 89년 1·5%이던 자동차 또한 91년 7·0%가 됐다. 이렇듯 시간이 흐를수록 보급속도는 가속화되어간다. 따라서 코피향인 아로마의 보존을 위해 원적외선 배전을 이용한 코피포트 등 첨단기술을 도입한 2000년의 신상품들도 나오기가 무섭게 각 가정의 주방을 차지할 것으로 여겨진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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