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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부진 씻은 『삼국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박이도록 들은 얘기 중의 하나가 삼국통일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탓에 소설·영화·TV드라마 어느 것 하나 정면으로 맞닥뜨릴 소재로 삼을 엄두를 못냈다.
KBS-1TV의 대하역사 드라마 『삼국기』가 겁 없이 이런 덩치 큰 소재를 다뤄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리고 달포 남칫 지났다. 불행히도 뚜껑을 열어보니 영 반응이 시원치를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다 보니 소화불량에 걸린 것이다. 그림을 예쁘게 잡으려 한 것이 화면을 만화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전투장에 있는 병사들의 군복과 얼굴은 왜 그리 깨끗한지. 사실감이 떨어진 화면구성이 여러 곳에서 틈을 보였다.
그런 이 드라마가 변신을 시작했다. 초반의 부진을 딛고 횟수를 거듭하면서 면모를 일신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기』는 궁중암투에 맴돌던 기존 사극의 틀을 깨고 선이 굵은 역사드라마를 지향한다 하여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 같은 프리미엄을 조금씩 까먹기만 하는 듯 싶었는데 24일 방송분에서 「선 굵은 드라마」의 가능성을 엿보였다.
자칫 고리타분해 보이는 소재를 녹여 역사인물을 재해석해내는 솜씨가 빼어나다. 아직은 테두리묘사에 그친 인상이나 신라가 강국 고구려·백제를 누르고 일어선 힘의 원천을 조심스레 묘사하는데 성공했다.
학계에서도 논란이 그치지 않는 통일의 완전성 여부는 뒤로하고 뿌리가 같은 민족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장부들의 기개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작품의 극적 구성이 비로소 제자리를 잡은 것은 역사드라마에 꼭 있어야 할,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부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망친 우유부단한 역사인물로 그려져 온 의자왕의 젊은 시절 묘사가 흥미롭다. 사직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젊음의 사표라 할만하다.
문제는 제작진이 얼마나 제대로 역사라는 「뼈대」에 역사극으로서의 재미를 갖춘 「살」을 붙여나가느냐에 있다.
극중 삼국시대 건물과 의상·소도구 등의 사실감이 뛰어나고 교육적 효과를 갖춘 점이 돋보인다. 아울러 설경·말타기 등 야외촬영 장면이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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