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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용주의자” 게이츠, 대북 대화 지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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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08면

지난해 12월 18일 국방장관에 임명된 뒤 선서를 하고 있는 로버트 게이츠. 현재 라이스 국무장관의 최대 원군이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라이스 지지 현실주의 그룹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라이스와 인연… CIA 말단 직원에서 국장 올라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의 아버지(조지 H 부시 대통령) 사람이다. 1989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안보 부(副)보좌관을 맡았다. 조지 H 부시의 친구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안보보좌관 밑에서다. 군 장성 출신인 스코크로프트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대척점에 서온 현실주의자다. 이라크전쟁을 비판했다. 딕 체니 부통령은 당시 국방장관이었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NSC 소련·동유럽 담당 국장이었다. 냉전 붕괴를 관리했던 주역들이다. 게이츠의 국방장관 임명에 아버지 부시의 영향력이 컸다는 전언들이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그는 부시 외교안보 라인의 세력균형을 깼다. 게이츠는 아버지 부시 때 체니와 이념적 성향이 맞았다고 한다. 둘은 소련 붕괴 때까지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의심한 강경파였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사일 공격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체니 편이 아니다. 새 미국 재단(NAF)의 스티븐 클레먼스는 “그는 체니 부통령의 정보에 관한 눈과 귀를 닫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을 둘러싼 체니 인맥의 정보 독점과 조작에 대한 견제로 보인다.

그는 라이스에겐 최대의 원군(援軍)이다. 라이스의 대북·대이란 대화 노선을 지지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4일자에서 라이스·게이츠·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3인방(Gang of Three)’이 부시 행정부 궤도수정의 주역이라고 전했다. 라이스 입장에서 보면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이라는 장벽이 없어지고 새 버팀목이 생겨난 셈이다.
게이츠는 스스로를 실용주의자(pragmatist)로 부른다. 지난달 27일 미국-터키 관계 회의에서다.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안정과 자유, 국가이익과 가치라는 대외정책 논의의 대립 축을 거부하고 “이 모두를 혼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방장관 지명 전 이라크 안정을 위해 이란·시리아와의 대화를 제언한 초당파 ‘이라크 연구 그룹’(ISG)의 멤버였다. 지난 2월 전시작전통제권 한국군 전환 문제에서도 유연성을 보였다. 우리 측이 희망한 2012년으로 늦추는 데 동의했다. 럼즈펠드였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럼즈펠드는 주한미군 재배치와 한·미동맹 재조정을 자신이 주창한 ‘군사 변환(military transformation)’●의 시험대로 삼았다.

게이츠는 아버지 부시, 스코크로프트와의 끈끈한 인연을 자랑한다. 지난해 12월 국방장관에 취임하기 전까지 4년 동안 텍사스 농업·기계(A&M) 대학의 총장을 지냈다. ‘조지 H 부시 스쿨’이 설치된 곳이다. 이 스쿨은 지금 현실주의 학파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 게이츠는 중앙정보국(CIA)에서 잔뼈가 굵었다. 27년 동안 몸담았다. 아버지 부시 정권 말기에 국장에 올랐다. 말단 직원이 국장이 되기는 처음이다. 그는 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국토안보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자리를 제의 받았지만 고사했다는 보도다

강온파 간 갈등 조정역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워싱턴의 강온파 사이에서 부시 미 대통령이 대북 정책 방향을 잡는 데 조타수 역할을 하는 중책.”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위치를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동아태 담당 안보보좌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대북 강경파인 체니 부통령과 잭 크라우치 백악관 안보부보좌관, 대북 협상파인 라이스 국무장관 사이에서 부시 대통령이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고난도 역할이다. 해들리는 라이스가 부시 1기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낼 때 그 밑에서 부보좌관을 지냈다. 당시 해들리는 ‘콘디의 그림자’란 별명을 얻었다. 라이스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을 뿐 자기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 부시가 대북 정책을 드라마틱하게 바꾸면서 해들리의 존재는 갑자기 부각됐다. 그린을 비롯한 소식통들은 “그 전까지 해들리는 국무부의 대북 협상론과 부통령실·국방부의 압박론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온 편”이라며 “이 때문에 북핵에 직접 관련도 책임도 없는 부통령실이 간섭할 여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부시가 이라크 수렁 탈출과 통치 유산(legacy)을 위해 새로 북핵 해법을 모색하자 해들리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소식통들은 전한다. ‘행동 대 행동’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검증하면서 단계적 해결을 추구하는 국무부의 북핵 로드맵을 부시에게 설명하고, 채택하도록 설득했다는 것이다. 해들리는 또 빅터 차 백악관 동아태 담당 안보보좌관이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직접 상대하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북한 측은 “국무부 아닌 백악관 관계자가 나와준 걸 평가한다”며 부시 대통령의 달라진 태도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이 결과 해들리가 소외되기 시작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부시가 국무부의 협상 노선에 손을 들어주면서 라이스는 해들리가 이끄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거치지 않고 부시에게 직보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워싱턴에는 최근 “NSC의 기능이 고장(malfunction) 났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리곤 한다.
해들리는 코넬대를 거쳐 예일대 법대를 졸업하고 워싱턴의 일급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약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 시절 딕 체니 국방장관 밑에서 4년 동안 군축과 비확산 및 미사일 방어 담당 차관보를 지냈다. 스코크로프트 전 안보보좌관 계열로 분류되지만 체니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 폴 울포위츠 세계은행 총재 등 공화당 외교안보 인맥과 교분이 두텁다.
 
라이스 대변 직업외교관
니컬러스 번스 국무부 정무차관

라이스 국무장관이 부시 행정부 대외정책의 대변인으로 부상했다면 라이스의 국무부를 대변하는 인물은 니컬러스 번스 정무차관이다. 존 네그로폰테 부장관에 이어 국무부 서열 3위다. 직업외교관을 중심으로 현실주의 정책을 떠받치고 있다. 국무부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담당 강경파들이 하나 둘씩 떠나면서 전문 협상가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는 셈이다. 라이스가 변한 것이 아니라 직업외교관들에 의해 바뀌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존 볼턴·로버트 조셉 전 국무차관을 비롯한 국무부 내 비확산 그룹과 지역 담당 그룹의 간극은 국무부와 국방부만큼이나 컸다.

그의 최근 발언들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실감케 해준다. 지난 2월엔 “우리는 세계를 향해 다시 관여정책을 펴야 한다”며 “이란과의 외교가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으며,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은 바람직하지도 실행 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 핵문제의 실무 총책이다. 번스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개진한다. 지난해 11월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에 강·온 양면정책을 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론에도 자주 등장해 라이스를 원호 사격한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부 대변인을 지냈다.

번스는 그리스 대사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사를 거쳐 2005년 현직에 발탁됐다. 국무부 굴지의 발칸 전문가다. 조지 슐츠·워런 크리스토퍼·콜린 파월 등 역대 국무장관으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한반도 평화체제 주창자
필립 젤리코 前 국무부 고문

지난해 11월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부시 대통령이 파격적 제안을 했다. 북한 핵문제 해결 방법과 관련해서다. “당신(노무현 대통령)과 나, 김정일이 함께 앉아서 종전협정에 서명하고 싶다.” 부시가 한반도 평화체제로 북핵 문제를 돌파하겠다는 구상을 우리 측에 전한 것은 처음이다. 우리 측 배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이 구상의 주창자가 올 1월 떠난 필립 젤리코 국무부 고문이다. 라이스와는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NSC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 사이. 냉전 종식과 독일 통일, 유럽 통합의 역사적 전환기에서 미국의 유럽 전략을 짰다. 그 후 라이스와 공동으로 『독일 통일 유럽 변용』이란 책을 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은 그의 이런 경험과 맞물려 있다고 한다. 이 구상은 처음엔 빛을 보지 못했다. 부통령실과 국방부의 반대 때문이었다. 특히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의 비판이 심했다고 한다. 그의 사임을 두고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라이스로선 거물급 우군을 잃게 됐다.

젤리코는 2002년 미 의회가 만든 9·11테러 초당파 특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행정부의 테러 대응을 검증했다. 그러나 그가 라이스와 친한 데다 부시 정부 출범 때 정권 인수위원회에서 일했기 때문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는 독일 통일 외에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 연구로 명성이 높다. 하버드대 교수를 거쳤으며 버지니아대 교수로 복직했다.

● Key word : 군사 변환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추진한 군 개혁 작업. 미래전에 대비해 군을 기동화·경량화하고 지휘관에서 말단 병사까지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것이 목표다. 중무장 사단은 신속 기동대로, 70t 주력 전차는 16~20t 장갑차로 바뀌고 있다. 해외 미군기지도 괌·일본 등을 빼고는 붙박이형에서 정거장 개념으로 된다. 휴전선에 배치된 주한미군을 한강 이남의 평택으로 옮기는 것은 이와 맞물려 있다. 변화의 폭이 커서 국내에서는 변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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