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씨 "불법모금 지시" 진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15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전격적인 검찰 출두가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변수가 됐다.

관심은 대선자금과 관련해 사상 처음 검찰 조사를 받는 대선 후보가 된 그가 과연 사법처리될 것인가다. 그에 대한 신병 처리가 한나라당은 물론 노무현 후보 쪽의 사법처리 수위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李전총재 측은 이날 밤 귀가한 뒤 "李전총재가 불법 자금 수수를 최돈웅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전 법률고문.구속)에게 지시했고, 두 사람이 기업에서 돈을 받도록 한 사실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그를 옭아맬 구체적인 위법 행위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얘기다.

대검 측은 "일단 수사팀은 (李전총재가) 사건 전모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최돈웅 의원과 서정우 변호사에게 모금을 지시했다는 식의 얘기만 할 뿐 언제 어떻게 지시하고 보고받았는지 법적으로 의미가 있는 부분은 전혀 얘기하지 않았다"는 게 문효남 대검 수사기획관의 설명이다.

현재 드러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은 5백2억원. 이 중 SK의 1백억원과 삼성의 40억원은 崔의원이, LG의 1백50억원과 현대차의 1백억원 및 삼성의 1백12억원(무기명 채권)은 徐변호사가 받은 것으로 밝혀진 상태다.

두 사람 모두 李전총재와 경기고.서울대 동문으로 최측근이다. 따라서 검찰은 이들이 李전총재와 교감을 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李전총재가 사법처리 대상이 되려면 불법 모금을 지시했거나 상의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도중에 보고를 받고 제지하지 않았음이 드러나야 한다. 그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

그러나 李전총재가 "불법 대선자금은 내가 시켜서 한 일"이라면서도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구체적 진술은 안해 범죄 구성 요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의 대가를 받으려는 의지를 확실히 했다"는 李전총재 측의 주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李전총재가 악화되는 여론에 쫓겨 마치 다 뒤집어쓰는 듯한 행동(기자회견)을 취했을 뿐 실제로 책임질 뜻은 없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검찰로서는 李전총재의 예상치 못한 출두에 자료 준비나 신문 전략 등을 충분히 짜지 못한 상태이기도 했다. 文기획관은 "불법 자금의 용처를 포함해 전반적인 실체 규명이 다 이뤄진 단계에 가서 (李전총재 등의) 법적인 책임 여부와 정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당 관계자들의 수사를 진척시켜가면서 李전총재와 관련된 부분이 확인될 경우 재소환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이재현(구속)전 한나라당 재정국장과 徐씨를 불러 조사했고, 16일에는 오랫동안 잠적했던 최돈웅 의원을 부를 예정이다. 김영일 당시 사무총장 등 자금 운용에 관여한 사람들의 추가 조사도 계획돼 있다. 그 과정을 거쳐 당시 상황을 완전히 파악한 뒤 李전총재 문제를 최종 결론낸다는 것이다.

강주안.임장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