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손님, 어떤 물 드릴까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호 30면

4년 전 런던의 레스토랑을 취재하기 위해 출장을 갔던 적이 있다. 그중 가장 힙(hip)하게 떠오르고 있다는 아시아 퓨전 레스토랑 ‘하카산’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특별한 요리도, 화려했던 인테리어도 아닌 감각적으로 생긴 생수병이었다.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했을 법한 컬러풀하고 시크(chic)한 디자인의 생수는 그곳의 베스트 셀링 아이템이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물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기에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느꼈던 것을 고백한다.

박소희 리포트-프리미엄 워터 시대

몇 년이 지난 지금 이야기는 달라졌다. 1년 전 문을 연 청담동 한 카페에서는 모든 물을 프랑스 생수 브랜드인 ‘에비앙’으로 사용한다며 특별함을 강조한다. 그뿐인가. 트렌디한 파티라고 하면 어김없이 에비앙이나 ‘페리에’ 같은 물이 보란 듯이 놓여 있다. 마치 ‘우리 파티는 조금 달라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 어떤 물을 마시느냐가 어떤 옷을 입고, 가방을 드느냐만큼 자신을 드러내는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한 여성이 가방에서 물을 꺼내자 그녀의 값비싼 의상이나 가방 때문이 아닌 물 때문에 다시 한번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물론 웰빙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에 맞춰 유행을 타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을 입고, 타느냐보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중요하다면 하루 2ℓ 이상을 섭취하는 물만큼 중요한 음식이 또 있을까.

요즘 뜨는 물은?

인기 상승 중인 물로는 ‘피지워터’를 들 수 있다. 피지의 깨끗한 자연환경을 강조하며 피지섬 화산 암반수를 담은 ‘피지워터’는 미네랄이 풍부하고 피부 노화를 막는 실리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할리우드 스타가 마시는 장면이 파파라치에게 찍혔거나 ‘섹스 앤드 더 시티’ ‘프렌즈’와 같은 미국 드라마 PPL을 통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 물은 현재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대부분의 특급 호텔과 강남의 백화점들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수입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기대 이상의 인기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올해에는 많은 물량을 확보하려 한다고 말했다.
기능성 물 중 ‘버치 샙’이라는 식물성 물도 주목받고 있다. 북유럽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자작나무에서 채취한 수액으로 각종 염증과 이뇨ㆍ항에이즈제 약품을 만드는 원료와 후라보노이드 배당제가 들어 있고 인체의 체액 성분과 유사한 조직으로 구성되어 빠르게 흡수된다고 한다. 다른 물에 비해 꽤 고가에 속하지만 화장품 원료로까지 쓰인다고 해 피부에 뿌리는 물로도 유명해졌다.
이 밖에 캐나다의 ‘휘슬러워터’, 이탈리아 병원과 약국에서 유일하게 판매된다는 ‘라우레타나’, 강원도 홍천 205m 지하에서 끌어올린 ‘한국 약산 게르마늄’, 수심 3000m 바다에서 끌어올린 일본의 심층수 ‘머린 파워’ 등이 주목받는다. 크게는 스틸과 스파클링으로 나누고 수원지 기준으로는 일반 샘물ㆍ빙하수ㆍ심층수ㆍ암반수로 나눠져 국내에 판매되는 유명 생수만 40여 가지에 달한다.
2006년 1월에는 아이들을 위한 프리미엄 생수 ‘와일드 알프 베이비 워터’까지 상륙하면서 타깃층이 넓어졌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맥에서 취수한 ‘베이비 워터’는 용해도가 높아 끓이지 않아도 분유가 잘 녹을 뿐만 아니라 산소를 비롯한 각종 미네랄, 칼슘 및 불소 등의 영양분이 그대로 살아 있다고 알려져 유명 인사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을 위해 구입하며 입소문이 났다. ‘와일드 알프 코리아’의 정유연씨는 “‘베이비 워터’ 같은 경우는 지인들의 권유로 백화점에서 한두 병 사보고 본사로 직접 연락해 박스로 구매하는 분이 많다”며 점점 반응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회사에서는 지난해 6월에는 ‘아쿠아 베이비 워터’를, 12월과 올해 3월에는 최고급 탄산수인 ‘몬테스’와 ‘스트래스모어’까지 론칭하며 프리미엄 물 시장에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프리미엄 물 전성시대

물 시장의 변화를 가장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곳은 백화점 내의 식품 코너다. 신세계백화점은 2005년 여름부터 ‘세계의 미네랄 워터’라는 코너를, 압구정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월드 워터 존’을 따로 마련해 놓고 있으며, 갤러리아 또한 2005년 9월 리뉴얼 이후 프리미엄 생수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압구정 현대백화점 생수 담당 박정근 대리는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다녀온 고객이 본인이 경험했거나 맛본 생수를 찾아달라며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오프라인에서의 반응은 고스란히 온라인에도 반영된다. 40여 종의 프리미엄 물을 취급하는 ‘워터라임 닷컴’의 경우도 박스로 구매하는 고객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제아무리 돈이 많다고 물까지 이렇게 마시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료 하나하나에 유기농이니 산지를 따지는 것이 요즘 추세다. 물에도 엄연히 맛과 기능을 포함해 등급이 존재한다. 단순히 누군가를 모방하는 심리가 아닌, 기호에 맞춰 소신 있게 따져 마시는 것이 손가락질 당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다만 아직까지 복잡한 유통 경로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물의 가격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국내 회사 또한 기능성 생수나 프리미엄 생수를 시판할 계획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다채로운 물이 서로 경쟁력을 갖춰 맛과 기능은 물론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자들을 기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박소희씨는 사람과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감각의 촉수를 뻗어두고 있는 패션·라이프 스타일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