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재계회의를 준비할 때였죠. 회장님이 주재하는 자리였는데 모든 일정에 맞춰 시나리오를 짜라고 하더군요. 밤새워 준비해 갔는데도 시나리오 종이에 ‘만약 상대가 엉뚱한 대답을 하면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라면서 추가로 지문을 여러 개 더 써넣었어요.”
우여곡절 끝 출범한 조석래號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31대 회장으로 뽑힌 조석래(72) 효성그룹 회장과 함께 일해 봤다는 재계의 한 인사는 그를 ‘깐깐하다’고 평가했다. 효성의 최병인 사장(신규사업 부문)은 “경영 컨설턴트같이 전략적 사고를 하는 총수”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효성 관계자는 “자신이 완전히 이해했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경영스타일”이라고 귀띔했다. ‘완벽주의자’라는 얘기다.
조 회장은 젊은 시절 대학교수를 꿈꿨다. 경기고와 일본 와세다대 이공학부, 미국 일리노이 공대 대학원을 졸업한 유학파다. 게다가 독서광이다. 승용차에 책을 쌓아두고 짧은 이동시간에도 틈틈이 집어들 정도다.
이 같은 그의 인텔리적 성향은 집안 내력이다. 경남 함안의 대지주 집안 출신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회장은 또래 기업인 중에서는 드물게 정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과 동업(1948년 1000만원 출자, 62년에 결별)을 할 때는 ‘걸어다니는 무역백과사전’이라는 별명을 가진 국제통이었다. 이런 전통은 조 회장을 거쳐 3세인 세 아들에게도 이어졌다. 장남 조현준(39)사장을 비롯해 차남 조현문(38)부사장, 막내 조현상(36) 전무가 모두 미국 명문대를 나왔다. 재계에서는 ‘자식농사’를 잘 지은 총수로 소문이 났다.
교수 같은 ‘완벽주의자’로 알려진 조 회장이 매끄럽지 못한 추대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경련 회장직을 선뜻 받아들인 이유는 뭘까.
전경련 회장직에 대한 그의 열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란 게 주변의 분석이다. 다른 기업 회장들이 모두 고사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조 회장만 유일하게 강한 의지를 표시했다. 그는 회장단 회의에서 “힘 있는 전경련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히면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전경련 회장직에 대한 그의 의욕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만한 대목이다. 어쨌든 조 회장은 위기의 전경련호를 이끌어야 한다. 문제는 추진력이다. 특유의 신중함이 지나쳐 때로는 답답하게 보일 때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4대 그룹이 방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기라는 전경련 조직을 이끌기에는 카리스마와 후덕함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그가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첫 번째 과제”라고 말했다. 또 일부에서는 그의 동생인 조양래 한국타이어 사장과 사돈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관계도 거론한다. 하지만 그의 소신과 추진력을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한·일 간 독도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양국 재계회의에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주변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는 것. 따라서 재계를 대변해 소신 있게 할 말은 다하는 힘 있는 전경련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
조석래 회장은
故 조홍제 효성 창업주의 장남.
1966년 효성물산 관리부장으로 입사한 뒤 동양나이론·효성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를 거쳐 81년 회장직에 올랐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일어 실력으로 현재 한·미 재계회의 한국위원장, 한·일 경제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기업인 중 ‘골프 고수’로 유명하다. 칠순을 넘긴 지금도 싱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부인 송광자(64) 여사와 3남을 두고 있다. 송 여사는 재무부 장관, 수출입은행장을 역임한 송인상 한국능률협회장의 셋째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