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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터가 식당의 ‘왕’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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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27면

“타르타르 스테이크를 시켜놓고 황당해하는 경우가 많았지.”

김태경ㆍ정한진의 음식 수다

“하하 그렇죠. 무슨 스테이크가 이렇게 싸지, 하면서 주문하고 보면 육회 같은 게 나오니.”

서울 청담동에 있는 아담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Eo’에 앉자마자 웃음보가 터져나왔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그런 실수를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유럽에 고기를 생식하는 문화가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그런데 타르타르 스테이크가 어디에서 유래한지 아세요? 13세기에 몽골이 유럽을 침략했잖아요. 몽골이 폴란드에서 유럽연합군을 대파하고, 항복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어린아이까지 몰살시켰죠. 당시 몽골인의 일부가 타타르족이었는데, 그 사나운 부족이 쇠고기를 날것으로 먹는 것을 유럽인들이 보게 되었죠.”

선배가 재빨리 말허리를 끊고 들어온다. “이 쇠고기 육회가 독일 함부르크에 와서 햄버거라는 익힌 떡갈비로 변한 거 아냐.” 옆구리를 제대로 찔렸다.

웨이터가 다가와 오늘의 메뉴를 설명한다. 호기심이 입 속에서 감돈다. 처음 나온 접시부터 궁금한 게 많다. 웨이터에게 물어보니 자세하게 알려준다.

“식당에선 웨이터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 물론 요리사와 손님도 중요하지만.” 선배 말에 절대 공감이다.

“웨이터란 요리사와 손님을 연결해 주는 매개자이지. 손님에게 음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 웨이터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고.” 당연한 말씀이지만, 김 선배 말이 길어질 것 같다. 음식은 식기 전에 먹어야 맛있는 법인데.

“어떤 손님들은 나는 이런 음식을 좋아하고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니 반드시 그렇게 해놓으라고 큰소리치지. 스스로 자신의 입맛을 가두는 꼴이야. 웨이터가 새로운 음식을 권하는 것은 손님의 취향을 고려해 새로운 미각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인데.”

“그렇죠. 게다가 웨이터는 현재 어떤 식자재의 상태가 가장 좋은지 알고 있기 때문에 손님에게 그걸 권해주기도 하고요.” 이런 면에서 보면 식당에서는 손님이 왕이 아니라 웨이터가 ‘왕’이다.

“리츠 호텔을 세운 세자르 리츠는 웨이터 출신이었죠. 현대 서양 요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스코피에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와 함께 세계적인 호텔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리츠가 웨이터 출신이라 고객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겠죠.”

“요리사보다 웨이터가 식당을 열면 더 잘된다는 말도 있잖아.”

“제가 프랑스에서 일하던 레스토랑 ‘라세르’의 창립자도 웨이터 출신이었지요.”

창립자 성을 딴 이 레스토랑은 지금도 ‘미슐랭 음식 가이드’에서 별 두 개를 받는 57년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의 총지배인은 머리가 허옇게 센 두 노인이었다. 레스토랑이 문을 열 때부터 근무하기 시작한 두 총지배인은 이 레스토랑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이들은 단골손님의 취향ㆍ습관에 건강상태까지, 손님에 관한 온갖 것을 다 꿰고 있었다.

“‘라세르’의 디저트 파트에서 근무할 때였어요. 총지배인이 디저트 파트에 올라오더니 결혼기념일을 맞은 노부부가 있으니 작은 케이크 하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했던 노부부는 지난해에 결혼기념일을 맞아 이 식당을 방문했고, 그때 총지배인은 정성을 다해 노부부의 시중을 들었다. 그러자 그 다음해에 이 노부부가 또 예약을 했고, 이 부부를 기억하고 있던 그가 작은 성의를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때, 저런 총지배인이 있어서 이런 레스토랑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선배와 나는 그런 식당을 꿈꾸며, 오너 셰프(주인장 겸 요리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Eo’(02-3445-1926)에서 흡족한 식사를 했다. 오너 셰프의 음식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짧은 시간 내에 이 레스토랑을 인구에 회자하게 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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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 먹기를 낙으로 삼는 대학 미학과 선후배 김태경(왼쪽ㆍ이론과 실천 대표)ㆍ정한진(요리사)씨가 미학(美學) 대신 미식(美食)을 탐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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