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생활 중 최악의 시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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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89년 2월 부임한 박종상 LA총영사(62)는 통상 임기 3년을 넘기고「말년」(?)에 4·29 LA폭동이라는 호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번 사태로 상처를 입은 교포들에게는 무어라 위로할 말을 찾기 힘듭니다. 공관으로서 교포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노력을 다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교포사회의 손실을 볼 때 자책감이 앞섭니다.』
박 영사는 폭동 이튿날인 4월30일 오전 교포 단체장들을 긴급 소집,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교포 라디오 방송을 통해 위급시 대처방법을 제시하는 등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날 총영사관 건물 1층에 입주해 있는 한국 외환은행 LA지점에 무장한 흑인, 중남미계 폭도들이 차량으로 돌진, 습격을 시도하고 영사관주위 곳곳에서 화염이 치솟자 박 총영사 는 본국에 이 사실을 보고하고 영사관 철수명령을 받았다.
박 총영사는 교포사회의 구심역할을 해야할 대책본부가 기능을 상실해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에 임시상황실을 LA인근 부 총영사 집으로 옮겼으나 이를 두고 교포사회 일각에서는「총영사가 도망갔다」는 소문을 내 몹시 난처했다고 말했다.
『폭동 당시 LA시·주정부·LA경찰국 등에 긴급대책을 요청했지만 엄연히 미국이라는 주권국가 내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내정 간섭이라는 역공을 받을 수도 있어 무척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박 총영사는 폭동이 계속되면서 한인타운까지 피해가 확산되는데도 경찰력이 배치되지 않자 톰 브래들리 LA시장에게 수차례 경찰배치를 요청, 브래들리 시장으로부터『좀 심한 것 아니냐』는 불평을 듣기도 했다.
재외공관으로서는 규모와 위상 면에서 정상급을 유지하고 있는 LA 총영사관에는 총영사·부 총영사 2명과 경제·세무·교민·민원·의전·교육 등 분야별 담당영사 18명, LA한국문화원 원장 및 영사2명 등 모두 24명의 외무부 소속·배속공무원이 일하고 있다. 박 총영사는 재임기간 3년을 채우면서 원칙에 충실하고 꼼꼼하게 일을 처리해 왔다는 평을 듣고 있으나 일부 교포인사들은 박 총영사의 언행이 너무 무뚝뚝해 권위주의적인 인상이 강하게 풍긴다는 지적도 한다.
『외무부 공직생활 36년 동안 이번 사태가 가장 힘들었던 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본국정부에서 사태에 기민한 반응을 보이고 신속한 대처를 해준 것이 공관 임무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박 총영사는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55년 외무부 4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 말레이시아대사관, 참사관(73년), EC대사관, 참사관(74년), 캐나다 토론토 총영사(78년), 쿠웨이트대사(83년)등을 지냈다. 부인 한점순(59)여사와 2남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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