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인이 타깃인가(미국속의 한인들: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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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짧은 이민사 불구 급성장,타인종 시기/이대로면 흑인도 백인도 라틴계도 외면
4·29 흑인폭동으로 폐허가 된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으로 되돌아온 교포들은 미국에서 진정한 한인들의 이웃은 없다는 현실을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다.
흑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한인타운에서 주거와 상권을 공유하면서 살던 중남미계 마저 한인타운을 파괴하는데 주역을 담당했던 점과 사태를 방기한 치안당국의 무성의에 이르기까지….
사실 한인을 비롯한 동양계 이민자들은 흑인·중남미계 등 다른 소수민족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며 그것은 이민생활을 늦게 시작했으면서도 자신들보다 높은 생활수준을 향유하고 있다는 질투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인구센서스 결과를 분석해 보면 흑인·중남미계가 아시아계 이민자에게 품는 불만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90년의 경우 전체인구의 12%를 차지하는 흑인,8.8%를 차지하는 중남미계에 비해 동양계는 3% 정도에 불과하면서도 평균소득은 3만8천달러로 중남미계(2만3천달러)·흑인(1만9천달러)을 크게 웃돌고 있으며 백인 평균소득(3만2천달러) 보다도 높다.
이에 따라 아시안을 보는 소수계,심지어 백인들의 의식은 「그들이 새치기하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우리가 손해를 보고있다」는 식이다. 이같은 비우호적인 시각을 가장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그룹이 한국인 이민자들이다.
흑인과 중남미계 등의 불만은 한국인들이 그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 잘살고 있으면서도 그들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없고 일상적인 상행위나 사회관계에서 한인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피해심리로 압축된다.
또 한인들은 기타 동양계 이민자들과는 달리 단일민족이라는 특수성에서 오는 배타심리,그리고 우월의식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도 타인종 사회의 반발을 받는 주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박순자씨 사건에 이어 흑인 권총강도를 사살한 박태삼씨가 정당방위로 기소되지 않자 흑인들은 박씨의 가게 앞에서 넉달이 넘게 보이콧시위를 벌여 결국 박씨가 가게문을 닫고 말았다.
이처럼 한·흑 갈등이 첨예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교포사회에서는 특별기구까지 구성,흑인사회와의 화해를 모색했으나 아무런 결실도 얻지못한채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흑인사회를 상대로 장사하고 있는 한인들로서는 어차피 한·흑 마찰의 계기가 생길 때마다 수세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고 강한 톤으로 이들을 공박하는데는 항상 주저하고 자제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한인사회에서는 흑인 빈민자들을 위해 자선행사를 베풀거나,그들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각종 흑인촌 문화행사 등에 참가,한인들의 문화를 이해시키는데 주력했으나 흑인들의 마음까지 우리편으로 만드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한인사회의 공통된 느낌이다.
이번 폭동으로 교포사회는 그동안 큰 문제로 생각지 않던 중남미계 마저 한인들에게는 우호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게 됐다.
그동안 한인들은 상당수 중남미계 종업원들을 싼 임금으로 고용해 왔고,이들중 많은 숫자를 차지하는 불법체류자들에게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의식적으로 무시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흑인폭동으로 촉발된 이번 사태가 엉뚱하게 중남미계를 자극시켜 한인타운을 파괴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은 중남미계가 「군림하는 한인들」에게 평소 골깊은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제는 흑인촌에서 장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주장과 잠재적인 우범집단인 중남미계와 주거 및 상권을 공유하는 현재의 한인타운을 빠른 시일내에 이전하든지 새모습으로 탈바꿈 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흑인·중남미계와의 마찰은 언제라도 재발될 위험을 안고 있으며 상호이해가 뒷받침 되지 않는 피상적인 인종화합 노력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벽에 부딪친 체념상태는 흑인촌인 사우스 센트럴지역에서 장사하는 대부분 한인업주들의 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평소의 고객들이 약탈·방화범으로 돌변했던 이번 사태를 겪고 이들은 『하루속히 흑인촌을 떠나겠다』는 입장을 표시하고 있다.
캘폴리 포모나대 장태한교수(사회학)도 『이제 한인들이 저소득층 커뮤니티를 상대로 장사를 그만두는 길만이 더 이상의 인종마찰을 막는 길』이라며 한인들은 업종을 다변화 하고 미 주류사회에의 참여를 가속화해 흑인·중남미계가 겨냥하는 제1차 타깃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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