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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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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4일 오전 8시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의 연구실. 50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방진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한쪽에선 이날 새벽 도축장에서 떼어 온 소와 돼지의 난소에서 난자를 분리해내느라, 또 다른 한쪽에선 현미경을 쳐다보며 난자 속에 세포를 삽입하느라 여념이 없다.

낯선 외국인도 보인다. 그들의 긴장된 숨소리와 빠른 손놀림에서 일요일 아침의 여유는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연구실에서 최근 세계 최초로 광우병 예방 소와 장기이식용 무균돼지 복제에 성공한 황우석(黃禹錫.50) 교수를 만났다.

-먼저 잇따라 개가를 거두신 것에 축하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얼마 전'공부하러 왔다가 감전(感電)되어 간다'며 칭송하셨다지요. 그런데 연구실 분위기가 너무 숙연하고 다들 바쁩니다. 곁에서 지켜보는 제가 숨이 다 막힐 정도인데요. 오늘만 그런 것인가요.

"아닙니다. 알다시피 연구는 시간이 생명이지요. 게다가 복제연구는 세계적으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것이니 늘 긴장 속에 서두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곳에서만 하루 1천5백개의 난자를 추출하며 매일 직경 1백40㎛(1㎛는 1백만분의 1m)의 난자 속에 8백여개의 세포를 삽입합니다. 세계 어떤 연구실보다 많은 양입니다. 이를 위해 저를 포함한 40여명의 연구원들이 오전 7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토.일요일은 물론 공휴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난소 채취조는 오전 5시30분이면 도축장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복제연구는 말 그대로 3D입니다. 미혼의 여성 연구원도 피가 흥건한 새벽 도축장에서 소와 돼지의 난소를 채취해야 합니다. 예외가 없어요."

-모두가 주 5일제라고 들떠 있는데 연중무휴에 매일 14시간 근무라니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연구원들이 반발이라도 할 것 같은데요.

"직접 보셔서 분위기를 알겠지만 이곳에 타율은 없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원한 매니어예요. 세계 최초를 위한 연구에 미쳐있는 것이지요. 경제적 보상도 미미합니다. 11명의 전임연구원의 급료는 1백만원 정도며 대학원생은 등록금 지원 외 아무런 혜택도 없습니다. 출퇴근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인근 봉천동에 마련한 작은 아파트에서 공동으로 숙식을 해결합니다. 이들 중엔 외국에서 온 대학교수도 있고, 의대 수석 졸업생도 있으며, 원예학과 학생도 있습니다. 전공 불문하고 연구열에 불타는 이들만 모였어요. 광우병 예방 복제소가 저절로 탄생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며칠 전 복제 송아지가 태어났을 때 행여 잘못되지 않을까 볼을 어루만지고 입.코를 닦아주며 여성 연구원 둘이 사흘간 밤새워 송아지 우리를 지켰지요. 누가 시켜서 될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을 거친 연구원은 자연스럽게 이 분야 최고가 됩니다. 벌써 14명의 연구원이 국내외 교수로 진출했지요."

-그래도 연중무휴는 좀 심해보이는데요. 쉴 땐 쉬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사실 저도 그 점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여유가 없습니다. 마치 제철소에서 용광로의 불을 끌 수 없듯 복제연구는 연속성이 중요합니다. 선진국처럼 주말 이틀을 쉬게 되면 난자 채취 및 성숙 등에 지장을 초래해 실제론 나흘이 손해입니다. 우리가 일주일에 7일 모두 연구하는 반면 선진국은 3일만 연구하는 셈이지요. 복제 등 생명공학은 거창한 설비나 천재적 발상보다 끈기와 손기술의 싸움입니다. 주말을 포기할 수밖에 없죠. 그러다 보니 실험실 커플도 많이 생겨 지금까지 4쌍의 연구원 부부가 탄생했고, 조만간 2쌍도 결혼할 예정입니다."

-이번 광우병 예방 소와 장기이식용 무균돼지 복제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시오. 독자들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어떤 혜택이 돌아올지 궁금해 합니다.

"광우병 예방 소는 말 그대로 광우병을 이길 수 있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소의 복제를 통해 대량 생산해 냄으로써 안심하고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내년 일본 쓰쿠바 동물고도위생실험실에서 최종적으로 광우병 예방 효과가 입증되면 수년 내 광우병 걱정 없는 쇠고기를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광우병 예방 소보다 현실적으로 더욱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무균돼지입니다. 거부반응이 없는 이식용 장기를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 6마리를 복제했는데 안타깝게도 3시간 이내에 죽었습니다. 무균상태로 복제돼지를 태어나게 해서 사람에게 장기를 줄 만한 크기로 자라게 하려면 최소 14일 동안 살려야 합니다. 현재 몇가지 기술적 문제를 보완 중이며 이것이 해결되면 향후 5년 이내 1형 당뇨환자에게 무균돼지의 췌장 세포를 이식하는 임상시험이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췌장은 우리 장기 가운데서 면역학적으로 가장 거부반응이 적기 때문입니다. 췌장 이후 심장과 콩팥.폐.간 등으로 이식이 진행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번 발표가 논문보다 언론에 먼저 성급하게 보도됐다며 연구업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비판도 있습니다.

"저 역시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 논문에 먼저 게재하길 원하고 언론엔 나중에 공개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복제연구는 속성상 비밀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엔 대리모를 양산할 수 있는 대규모 농장이 없습니다. 번식력이 뛰어난 종 가운데 발정기가 시작된 지 7일째 되는 것만 복제 동물을 낳을 수 있는 대리모로 선발합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5천마리의 소나 돼지의 모집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 40여개 농가에 분산해 대리모를 키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기자들에게 새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결국 특허만 출원한 채 논문 게재를 포기하고 언론에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논문 게재를 게을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해마다 우리 교실에서만 국제적 권위를 인정받는 SCI 논문에 30여편씩 제출하고 있습니다. 제 좌우명이 '하늘을 감동시키자'입니다. 사람이야 적당히 눈속임으로 속일 수 있겠지만 하늘은 진실만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이며 복제분야에서 독보적 원천기술도 다수 보유하고 계신데 혹시 벤처창업으로 풍요로운 삶을 생각해보신 적은 없습니까.

"많은 분이 제가 떼돈을 버는 줄 알고 있습니다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정부에서 올해 20억원이란 연구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 연구실엔 5억5천만원만 지급했으며 나머진 복제를 연구하는 대학 등 자매연구기관 12개 팀에 분배했습니다. 5억5천만원은 재료비도 안됩니다. 아직도 제 연구 가운데 줄기세포 연구는 간이건물 임시막사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 연봉은 5천만원이 채 안됩니다. 아직도 전세아파트 신세여서 이사철만 되면 이리저리 옮겨다녀 아내에게 늘 미안합니다. 그간 취득한 특허는 저 개인 소유가 아니라 서울대, 나아가 국가의 것입니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저나 우리 연구원들은 바보지요. 이 고생을 왜 합니까. 실제 엄청난 투자를 제안한 곳도 있었지만 연구원들과 숙고 끝에 거절했습니다. 복제연구야말로 헝그리정신 속에서 꽃이 피는 분야인데 한눈 팔다'풍요 속의 나태'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수년 전 한 외국 정부가 80만평 규모의 목장과 5만평 규모의 연구실을 제공하겠다며 스카우트 제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엔 국경이 없어도 과학자에겐 국가가 있다는 생각으로 사양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엔 한 정당으로부터 비중있는 자릴 제의받았지만 마찬가지로 거절했습니다."

-복제연구가 생명윤리에 위배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과거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이종(異種)간 세포융합이나 복제실험은 이제 중단한 상태입니다. 요즘은 동물애호론자로부터 비난을 받습니다. 이 팩스를 한번 보시지요(黃교수가 꺼낸 팩스엔 동물을 인간의 편의대로 실험대상으로 삼지 말고 편안하게 내버려두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 정도면 점잖은 편이지요. 직접 연구실로 찾아와 항의하는 분도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 역시 동물의 병을 치유해온 수의사이며 경기도 광주의 실험농장에선 애완용 개도 기르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실 뒤편엔 실험동물의 넋을 기리는 '수혼비(獸魂碑)'가 있습니다. 동물의 희생은 물론 가슴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복제연구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의 질환을 치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확신합니다. 큰 틀에서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정리=홍혜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황우석 교수 약력=▶1953년 충남 부여 출생▶77년 서울대 수의학과 졸업▶82년 서울대 임상수의학 박사▶84~86년 일본 홋카이도대 객원연구원▶86년~현재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97년 서울대 동물병원장▶99년 국내 첫 복제 소 '영롱이' 탄생▶2001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세종문화상 대통령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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