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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포기만이 국제사회서 사는 길(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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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핵무기 개발의 의심을 받으면서도 국제적인 핵사찰을 거부해 논란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던 북한이 마침내 IAEA에 핵사찰 대상목록을 제시함으로써 북의 핵무장 가능성 여부가 밝혀질 단계에 이르렀다.
북한이 마감일보다 25일이나 빠르게 제출한 14개 항목의 사찰대상은 모두 연구용·교육용이거나 산업용으로 되어있다. 특히 핵무기 원료를 만드는 시설일 것으로 서방전문가들의 의심을 받았던 영변 방사화학연구소에 대해 이 보고서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분리 및 폐기물 관리와 기술자 교육을 위한 방사화학실험실 이라고 설명했다.
IAEA에 의해 5일 공표된 북한의 보고서로는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가능케 하는 핵재처리 시설이 아직 없는 것으로 돼있다. 이 보고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북한은 우리보다 10년 늦게 지난 85년 핵무기 비확산조약(NPT)에 가입했기 때문에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언제든지 국제적인 핵사찰을 받을 의무를 지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얼마전까지도 IAEA의 핵안전조치 협정서명을 기피하고 핵무기 개발의혹을 받으면서도 핵사찰을 거부해왔다.
이같은 북의 태도는 핵사찰 거부가 일단은 유리한 외교적 무기가 된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그것을 외교카드로 적절히 이용함으로써 주한미군의 핵무기 철수,우리 정부의 핵부재선언,비핵화 공동선언 등 그들의 오랜 목표들을 이뤄냈다.
그러나 북의 핵무기 개발의혹은 이제 북한이 절실히 추구해온 미국과의 관계개선,일본과의 수교,그리고 남북한간의 경제협력의 장애가 되고있다. 한·미·일 3국은 국제사회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북한 핵사찰을 대북한 관계개선의 선행조건으로 삼고있기 때문이다.
이제 북은 핵카드로 얻을 것은 모두 얻었다. 남은 것은 잃을 것 뿐이다. IAEA사찰·남북 상호사찰의 이행을 통해 핵무기 개발의혹을 어서 빨리 해소하지 않으면 북은 서방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을 상실하고 말 것이다.
문제는 북의 성실성이다.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IAEA 보고서 제출에 즈음한 성명서에서 국제적인 핵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평양측이 이 성명대로 행동하고 이번 보고서에 거짓이 없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상태는 그만큼 감소되고 협력관계는 더 한층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
땅이 비좁은 한반도에서 핵무기가 사용된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전면적 괴멸과 국토의 전체적 황폐화로 이어진다. 『한반도를 비핵화 함으로써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나라의 평화통일에 유리한 조건과 환경을 조성하며,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이바지 한다』는 남북 비핵 공동선언의 엄숙한 정신에 충실하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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