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넘자 이한동씨도 “경선포기”/민정계 단일화 심야10시간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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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위원,지지자들 번복요구에 큰 역정/이종찬 의원 “용단내린 박위원께 감사”
반김영삼 민정계 7인 중진협의체가 17일 8차모임에서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이종찬 의원을 단일후보로 뽑는 「작품」을 만들어 낸데는 박태준 최고위원의 불출마선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회의는 이날 오후 3시 정각 롯데호텔 아테네가든에서 두겹의 문으로 굳게 닫힌 밀폐된 공간속에서 시작해 18일 0시40분까지 10시간동안 마라톤으로 진행됐다.
단일화협상의 최대고비는 회의시작 1시간50여분만인 오후 4시50분쯤 사회를 보던 박최고위원이 돌연 단호한 어조로 『후보 단일화 실현을 위해서라면 살신성인의 심정으로 출마를 포기하겠으니 여러분들이 의논해 꼭 한 사람을 선임해 주기 바란다』고 「폭탄선언」을 한 시점이었다.
그때까지는 『총선 민의를 옳게 수용하려면 새정치문화창조와 지역감정해소가 경선과 대선의 명분으로 내세워져야 한다』(이종찬) 『모두 한발짝씩 물러서자』(양창식) 『3명이 다 나서면 예선(경선)에서도 통과할 수 없다』(심명보) 『지난번 대선때 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야당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았던 사실을 상기하자』며 서먹한 분위기속에 원론적인 얘기만 오갔다고 한다.
박최고위원은 불출마선언을 한뒤 회의장과 붙어있는 옆방으로 나갔고 남은 의원들은 그의 본심을 헤아리느라 고심했다는 것.
이중 당사자인 이종찬·이한동 의원은 회의장 한쪽에서 상대방에 대한 불출마설득을 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15분쯤뒤 박최고위원은 다시 회의장에 들어와 의원들의 등을 일일이 두드리면서 『(단일후보를) 꼭 뽑아내라. 안뽑아내면 내가 중대결심을 한다』고 압박을 가했다. 비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속에 심의원과 양당선자가 『박위원이 출마해야 한다는게 저희들의 생각인데 왜 불출마선언을 하셨느냐』『불출마 뜻을 번의해달라』고 수차례 촉구했다.
이에 박최고위원은 바깥에서도 들릴만한 큰 소리로 『내 진심을 그렇게 몰라주느냐. 내가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람인줄 아느냐』고 역정을 내 회의는 두 이의원사이의 선택의 문제로 좁혀들기 시작.
오후 8시45분쯤 반주없이 도시락으로 간단한 식사가 30여분간 있었다.
긴박감이 고조된 가운데 두 이의원,옆방의 박최고위원,나머지 네명의 세 축을 중심으로 서로 교차 설득과 주장이 오가면서 또다시 3시간이 흘렀다.
박최고위원은 두 이의원가운데 어느쪽이 낫다는 시사를 일절 하지 않고 『반드시 단일화를 이루라』는 압력을 가했으며 나머지는 대부분 이한동 의원을 집중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설득의 기본논리는 대국민 득표력과 대중성,경선에서의 대의원 확보능력,선명한 이미지 등에서 누가 더 강하냐는 것.
자정을 넘긴 0시24분. 드디어 이한동 의원이 집요한 설득을 당한 끝에 두 손을 들었다.
박위원은 마지막 전체회의를 주재하면서 『이종찬 동지가 단일후보로 결정된 것으로 하자』고 했고 만장일치 박수로 이에 대한 동의가 이뤄졌다.
이종찬 의원은 『특히 후진양성을 위해 살신성인의 용단을 내려준 박최고위원께 감사드린다』『우리는 특정인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게 아니고 총선민의에 부응하기 위해 모였다』『끝까지 공명정대하게 경선을 치름으로써 우리 정치발전사에 새 장을 장식토록 하겠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인사했다.
이한동 의원은 『끝까지 나때문에 고생한 여러분에게 죄송하다. 결과에 승복하고 이종찬 동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회의는 이종찬 후보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방법과 기구구성에 대한 논의를 하지 못한채 끝나버렸다. 박최고위원의 최재욱 비서실장은 중진협의체는 이날로 해체됐다고 말했다.
당초부터 출마에 강한 의욕을 보였던 박최고위원의 돌연한 불출마에 대해서는 노태우 대통령이 직접 작용을 가했던 때문으로 해석하는게 정설.
노대통령은 16일 직접 박위원에게 전화해 자신의 의중을 전달한데 이어 이상연 안기부장을 직접 보내 불출마를 설득했다.
박최고위원의 결심이 흔들리는 과정에서 17일 아침엔 정해창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와 만나 다시 한번 확실한 용퇴를 촉구했으며 박최고위원은 이같은 「작용」에 대한 항의표시로 이날 오전의 김영삼 대표주재 세 최고위원의 차모임에 의도적으로 불참했다.
17일 내내 포철선거기획단등 박최고위원진영에 여러경로에서 직·간접의 외압이 가해졌고 박최고위원은 이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최고위원측은 불출마에 대해 구구한 해석을 하지말고 박최고위원이 민정계 단일후보를 만들어 내기 위한 충정으로 이해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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