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사람보다 더 희생하고 사랑하는 동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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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는 우유 배달부 비투스 드뢰셔 지음, 이영희 옮김, 396쪽, 이마고, 1만3500원

28마리의 점박이하이에나 떼가 닷새에 걸쳐 120㎞ 장거리 경주를 한다. 활동 영역이 일정한 하이에나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이 하이에나 무리는 2주전 태어난 새끼 세 마리를 다람쥐 굴 속에 밀어 넣고 왔다. 먹잇감인 누 떼가 싱싱한 풀을 찾아 북쪽 마사이마라 초원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하기에 너무 어린 새끼들을 놔두고 어른들이 피곤한 왕복 여행을 반복하는 것이다. 어미들이 누를 사냥해 포식한 뒤 그야말로 '살아있는 우유통'이 돼 고향에 돌아가 새끼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다. 하이에나가 우유 배달부가 된 이유다.

다윈 이래 생물학의 지배 개념은 '자연선택'이었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의 세계다. 네오콘(신보수주의)이 득세한 세계질서를 합리화한 것도 그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동물행동학은 동물들의 이타적 행동에 대한 보고를 계속하고 있다. 이타적 행동이 집단의 생존과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작가 비투스 드뢰셔는 이 책에서 50년 동안 6대륙 구석구석을 직접 탐험해 기록한 동물들의 이타적 생존전략을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그는 동물들의 행동에서 '서로 대화하라' '배우자에게 성실하라' '자식을 위해 희생하라' '죽음을 애도하라' '고난을 참고 이겨내라' '싸우지 말라' '더 아름다우라, 더 평화로우라'의 7가지 솔로몬의 지혜를 발견한다.

동료를 괴롭힌 몽구스를 떼로 몰려가 혼내주는 난장이몽구스에서부터 80 평생 가운데 70년을 한 명의 배우자와 해로하는 앨버트로스에 이르기까지 동물들의 놀라운 능력과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부부.자식 사랑의 감동적 이야기가 펼쳐진다.

곳곳에 녹아 있는 유머는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식이다. 알프스 산지에 사는 노란부리까마귀의 언어를 연구하던 스승과 조수가 있었다. 스승이 나타날 때마다 잦아지는 까마귀의 말을 조수가 연구해 봤더니 이런 뜻이더란다. "저 여자, 정말 밥맛이야." 자신들의 둥지를 자꾸 들춰보기 때문이었다나.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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