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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환갑」(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한에서는 8·15광복절을 최대의 국경일로,그리고 음력 설날과 추석을 최대의 명절로 꼽는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15일이 최대의 국경일이자 또한 최대의 명절이기도 하다. 그래서 해마다 북한은 김일성의 생일을 「민족최대의 명절」로 꼽고 성대한 잔치를 벌여왔지만 올해는 80회를 맞는 생일이라 더욱 떠들썩하다. 북한주재 러시아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요즘 평양시가는 마치 커다란 병영을 방불케 하는 모양이다. 밤마다 대규모 기동연습에 동원된 군사장비와 군인들로 요란스러운가 하면 근교에서는 열병식 준비에 한창인 탱크들의 굉음으로 밤잠을 설치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낮에는 대규모 집단체조에 동원된 어린학생들이 모든 거리와 광장을 메우고 있다고도 한다.
북한 당국은 이번 80회 생일에 맞춰 8백만송이의 꽃을 평양시 일원에 장식,그야말로 평양을 「꽃의 도시」로 가꿀 계획도 세우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의 한 영화 감독이 제작한 필름 『붉은 왕초』를 본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 주석 앞에서 마치 자동인형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때로는 열광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연민과 함께 전율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바로 지난해 김일성의 79회 생일 경축행사를 찍은 장면이다.
그런데 10억달러 이상의 경비를 쓰며 온나라가 들끓듯이 행사준비를 하고 있는 이번 생일잔치는 규모나 정성에 있어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설 것이 틀림없다. 그는 생일을 하루 앞두고 「대원수」칭호까지 받았다.
그 김일성 대원수가 지난 2월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60살은 환갑이 아니라 청춘이며 90살이 환갑이니 90살까지 살 의무가 있다』고.
그의 나이 90살이면 앞으로 10년,21세기 문턱을 넘어선 해다. 그 10년을 과연 그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 자신의 건강이나 돌보며 이런 낭비적인 생일잔치로 소일할 것인가,아니면 「환갑날」까지 정녕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작업에 진력할 것인가.<손기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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