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2부] 즐거운 집(3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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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친구가 되는 게 나빠? 아빠는 나보고 친구들이랑 싸워도 화해하고 다시 잘 지내야 한다고 했잖아."

아빠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이해하기도 싫고 이해해서도 안 된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아빠의 이런 태도는 나를 힘들게 했다. 이쪽에서 열을 내서 말을 하기 시작하면 싸늘해졌다. 언젠가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항의를 했더니 아빠는 그게 아빠 나름의 해결책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나는 매번 더 화를 냈는데도 아빠는 그걸 아직도 해결책이라고 할 것이었다. 대체 무엇이 해결된단 말일까.

"이해가 안 돼. 둘이 사랑했잖아! 둘 다 첫사랑이었잖아! …그런데 왜 미워하기까지 하냐구."

그러려고 그러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고 내 입에서 나온 그 큰 목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무안해져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그게 큰 목소리였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건 사랑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사랑이라는 단어 때문에. 아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줌마들이 모여 있다가 우리 쪽을 힐끔거렸다.

"아빠 약속 있거든. 좀 있다가 그거 다 마시고 일어나자."

아빠의 말투는 차가웠고 낮았다. 아빠는 벽처럼 서 있는데 나 혼자만 열을 내는 것 같아 무안하고 슬퍼졌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언젠가 아빠가 노인이 되면 하려고 마음속에 꽁꽁 감추어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는 설사 새엄마가 아빠를 때려도, 새엄마가 아빠보고 그만 살자고 한다 해도, 이혼하지 않겠지, 그래야 여러 번 이혼한 엄마가 잘못한 게 되니까. 그러고 나서 봐, 위녕 엄마, 내 말대로 넌 잘못한 거야. 그러니까 내가 옳아!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게 어쩌면 아빠 인생의 목표니까. 안 그래?"

아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깨달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아빠 앞에서 예쁜 옷을 입고 맘에 드는 귀걸이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패밀리레스토랑의 스테이크까지 잘 먹고,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일까. 아빠는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던?"

한참 후에 아빠는 물었다. 나는 내 자신이 싫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빠의 말이 옳은지도 모른다. 나는 제멋대로인 아이라는 게 말이다.

"위녕, 최소한의 도덕과 예의는 있어야 하는 거야. 아빠가 아무리 너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건 안 돼. 네 엄마가 그런 걸 다 무시하고 멋대로 사는 건 알지만, 네가 그런 것을 본받고 있는 걸 보는 것 같아 좀 힘이 드는구나."

"아빠,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엄마가 좋아. 엄마는 아빠가 말하는 대로 그렇게 멋대로 살지 않아.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 밥은 여섯시에 먹고 과일을 일곱시에 먹지 않는다구. 화요일은 출판사로 가고 목요일에는 수영을 하지 않는다구. 엄마는 밥은 배고프면 먹고 과일도 먹고 싶은 때에 먹어…. 출판사는 필요하면 가고. 수영은 물론 귀찮다고 안 해. 그래서 누구에게 나쁜대? 누가 피해를 보지? 그리고 엄마는 아빠 생각하지도 않아. 엄마는 상처를 날마다 되새기고 있지 않는다구. 엄마는 말했어, 나쁜 과거가 오늘까지 망친다면 그건 정말 우리들의 책임이라구."

"위녕, 그런 걸 보고 사람들이 그 여자한테 무책임하다고 하는 거야."

아빠와 나는 이 신선한 만남을, 아빠와 내가 오래도록 이어왔던 진부한 공방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아빠가 그 여자, 라고 호칭하기 시작한 엄마가 공식 출연자로 등록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런다구? 그게 누군데? 내가 지금 사람들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아빠 이야기하고 있는 거잖아."

아빠는 몹시 피곤한 얼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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