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과 기능-첨단 선진국제품 국산화의 공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과기연(KIST)은「국가미래과학기술을 이끄는 창조적 원천기술의 연구개발과 기초·응용과학의 연구 및 국내의 연구기관·학계·산업계와의 협동연구를 수행하고 그 성과를 보급하기 위해」설립된 우리 나라 최초의 종합 과학기술연구기관으로 한국과학기술의 메카로 통한다.
66년 종합연구소 설립을 위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미국대통령의 공동성명에 따라 그해 2월 10일에 출범했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에 따른 대가의 하나로 박대통령이 연구소설립에 대한 지원 요청을 했고 미국이 이를 받아들여 양국정부의 공동지원으로 설립됐다. 연구소 부지는 당초 태릉과 동구능 근처가 거론됐으나 대통령의 지시로 도심에 가까우면서도 아름다운구릉과 수목이 울창한 홍릉 임업시험장 구내 8만여 평으로 정해졌다. 이렇게 발족은 했지만 연구원 13명을 포함한 대명의 초창기직원들은 홍릉단지가 건설되기까지 서울 태평로·종로5가·종로2가의 셋방을 전전했다. KIST는 현재 연구원 5백10명을 포함해 8백97명(박사 2백63명)의 인력을 포용하고 있으며 부설기관인 시스템공학연구소(3백92명)와 유전공학연구소(2백28명)까지 합치면 전체인원은 1천5백 명으로 불어났다.
초창기 14개로 시작된 연구실은 한때 부설기관을 제외하고도 60개가 넘었으나 지금은 3개연구단에 37개 연구실로 숫자는 줄었다.
KIST의 조직은 지난해 기관평가 후 이상스럽게 조정돼 원장(박원희) 아래 부원장(김은영)이 있고 이사회산하의 연구기획심의위원회 아래 정책기획본부(소장 최영환)가 있는 이중구조로 돼있다.
KIST는 설립 후 지난해까지 약 2천억 원의 연구비로 4천9백 건의 연구를 수행했으며 출원·등록된 특허가 국내 1천1백 건, 국의 4백80건에 이른다. 초기의 선진국제품 국산화연구에서부터 첨단의 신제품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 산업발전의 견인차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KIST를 거쳐나간 인원은 2천7백여 명이며 이중 선임급 이상 고급인력은 약5백 명으로 60%가 출연연구소에, 25%가 대학에, 15%가 산업계에서 근무하고 있다. 특히 전문출연연구소의 등장과 함께 KIST출신들이 이들 기관의 기틀을 잡고 독립된 연구소로 키워 온 점은 KIST의 또 하나의 공적이 아닐 수 없다.
역대 원장(소장)은 모두 13대에 10명으로 이중 3명이 과기처장관을 지냈다. 원장의 급여는 상여금과 연구활동비를 포함해 월 1백80여 만원이며 여기에 임원수당 조로 50만원이 추가된다.
KIST가 한국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영광을 차지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 영광의 뒤 안에는 시련과 좌절과 파란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80년대 초 교육기관인 한국과학원과 강제 통폐합으로 시련을 겪은 KIST는 근 10년 만인 89년에 분리 독립됐으나 지난해의 출연연구기관 재평가란 이름으로 자행된 기능변경으로 다른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연구원들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돼 있는 등 또 한번 호된 홍역을 치르고 있다. KIST 사람들은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아는 대통령과 모르는 대통령에 따라 영광과 시련이 교차돼 왔다고도 말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