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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약세 틈타 세과시/이란의 이라크 기습 속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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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반체제」 지원해온 이라크에 경고/총선앞두고 반대파 제거도 겨냥
이란 정부가 5일 이라크내 반이란단체의 거점을 전격 폭격한 것은 이라크가 걸프전과 곧이은 유엔의 경제제재조치로 쇠잔해진 틈을 이용,고질적인 반체제세력에는 응징을,이들을 비호해온 이라크에는 경고를 내리려는 이중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란의 이번 기습공격은 정식으로 비행편대를 이뤄 치밀한 계산하에 감행됐다는 점에서 과거의 잦은 국경충돌과 구별된다.
더구나 폭격지점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근교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공격은 현재 터키가 이라크 국경지방의 쿠르드반군을 공격한 것과도 그 파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터키의 월경공격과 이란의 반복된 국경침입에는 관대했던 이라크정부가 이란공군의 폭격이 있은 직후 즉각 유엔과 아랍연맹에 항의서한을 발송하고 단호한 대응조치를 촉구한 것도 이라크가 이번 사건을 중시하고 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란정부는 사건발생직후 이라크공습사실을 시인하면서 『이는 지난 3일 이라크에 거점을 두고 있는 반이란 무장단체 무자헤딘 할크(이스람인민전사기구)가 이란국경을 침입,마을을 공격한데 대한 보복』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란이 이를 빌미삼아 그동안 반체제단체를 은밀히 지원해온 이라크 정부를 곤경에 몰아넣으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와 함께 오는 10일 의회선거(마즐리스)를 앞두고 있는 이란정부로서는 그동안 「눈엣 가시」였던 무자헤딘 할크를 무력응징함으로써 국내의 반대세력들을 일거에 제압,정권안정을 도모하려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에 이란의 공격목표가 된 무자헤딘 할크는 이슬람 사회주의 혁명을 주창하는 이란 최대의 반체제 조직이다.
현재 1만5천명 규모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무자헤딘 할크는 이라크정부의 군사지원에 힘입어 장갑차등 중화기로 무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한 무자헤딘을 어떻게해서든 눌러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이란정부가 이라크의 약세를 틈타 전격적인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공격이 제2의 이란­이라크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아직 희박하다는 것이 현지 서방외교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라크가 걸프전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데다가 걸프전 종전이후 아랍지역의 패자를 꿈꾸는 이란이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섣불리 전면전으로 들어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란은 현재 중국·북한 등 사회주의국가들로부터 대량의 무기를 사들여 이미 막강한 전력을 갖춰놓은 상태다.
결국 이란은 이번 이라크영토 폭격을 통해 군사강국으로서의 세과시와 함께 이라크가 이제는 2등국임을 전아랍국들에 보여주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일 이라크가 침략국 비난원칙에 충실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등에 업고 대 이란 응징권을 주장할 경우 한동안 잠잠했던 중동지역에 다시 전쟁이 찾아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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