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 김혜순 고원의 시들<현대 문학 3월 호>|세계가 읊조리는 소리 경청하는 시인의 귀|정현기<문학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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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이를 곱게 먹는 사람들이 쓰는 말은 대체로 자기 감정을 절제하여 주관적이거나 일방적인 주장이 되지 않도록 섬세하게 배려된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정확하게 읽는 태도는 사실 모여 사는 사람끼리 지켜야 할 가장 큰 덕목을 세우는 시작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정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기 감정이라는 철통같은 감옥 속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며 자기를 내세우는 아우성·주장에 몰두한다.
시인은 자기 존재의 그런 어둠을 꿰뚫어 보고 과감하게 그것을 삭제하며 세계가 읊조리는 소리를 경청한다. 그들은 우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읽는 관찰자이고 경청 자이며 감수자들이다. 그들의 언어가 연륜을 쌓으면 쌓을수록 세계와 그가 마주 서서 눈짓으로 교감을 나누며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에너지의 코드를 조절한다.
『현대 문학』3월 호에 실린 여러 시인들의 시편들 가운데에서 고 원씨의「백년에 한번」, 황동규씨의「풍장 43·44·45」, 그리고 김혜순씨의「사월초파일」을 읽으면 감수언어들을 가지고 철학이나 과학이 쓰는 인식 언어가 보임직한 세계를 정물처럼 담아 보이고 있음을 본다.
『아 나는 풍경 중독자가 아닌가?』고 쓴「밤새워 글쓰기」의 황동규는 그의 계속이어 쓰는「풍장43」에 이르러 동서양의 모든 음악을 다 듣고 난 지금 그런 소리 모두 잊고 시선으로만 세계를 느끼고 싶다고 쓴다.『바위 곁에 귀 내려놓고/숨죽인 바람.』그가 나이를 너무 먹은 탓일까, 세계가 너무 시끄러운 소리로 죽어 가고 있는 탓일까. 내 느낌으론 뒤의 것이다.
「풍장45」는 그가 나이 때문에 모든 소리를 끊고 존재 멈추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보인다. 『별은 하늘 가득/하늘과 마음이 만나는 곳이면/지평선 넘어서까지/하늘에 마음 뺏겨 붙박이 된 불꽃처럼/주렁주렁 주렁주렁 달려 번쩍인다./피여 잠들지 마라.』귀한 것을 놓치게 하는 것은 떠들썩한 세상 소리가 아닌가.
고 원씨의「백년에 한번」은 긴 시간 단위를 귀한 것의 한자로 놓고 그 기간을 기다려 핀 꽃과 향기, 그리고 그것을 만난 이의 행복을 노래 그리는 시다.
『구름 사이로 흐르는/달빛에 빛나면서/이슬에 타는 냄새라도/이렇게 아찔하게/달디달 수 있을지./해가 지고 나서야/만나는 사람./밤에만 향내로,-/백년에 한번/한 시인이 들렀다가/살짝 떠나가는/바람인가 보다.』
귀한 것을 귀하게 보는 눈, 그것이 시인의 눈이다.
김혜순의「사월초파일」은 위의 시인들이 제거해 버린 여러 사건·인물·소리·비명·호령-한마디로 비극적인, 노고 산 쪽에서 있었던, 역사 현장을 고성능 카메라로 찍어 인하한 역사 그림 시다.
세상의 모든 죄악과 업보를 구제하기 위해 자비의 부처님 오신날 사회정의를 외치다 죽어 간 젊은이를 장지로 옮기는 장면이 너무 생생한 인식 언어들로 이 시편은 채워지고 있다.
『모든 아카시아들 하나씩 매단/조등 아래로 달려드는/저 나방 떼먹으려 달려드는 저 새떼 먹으러/하늘 검게 칠하며 돌처럼 달려드는』
무서운 그림. 우리 모두의 가위눌림이고 악몽인 업보들, 무섭고도 아린 내용의 가청 권을 넘어선 높은 볼륨을 눈으로 확인시키는 절묘하고도 무서운 시로 내겐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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