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논술] 영역 별로 짚어보는 FTA와 보호무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2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 FTA 협상 타결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右)이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와 기자회견에 앞서 얘기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2일 타결됐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선 취약한 전략산업을 보호.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미 FTA 타결을 계기로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대해 경제.국제통상.과학.역사 등 영역에서 다각도로 조명한다.

경제 … 양국 비교우위 달라 … 무역으로 효율성 높아져

자급자족으로 경제를 부흥시킨 나라는 없다. 무역을 통한 재화나 서비스 교환이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1723~90)는 절대우위 개념으로 국가 간 무역을 설명했다. 절대우위란 재화를 생산할 때 상대국보다 생산성이 아주 높은 상태를 뜻한다. 국가 간 무역은 절대우위 상품을 수출하고 절대열위 상품을 수입해 이뤄진다. 예컨대 우리나라가 반도체에, 미국이 자동차에 절대우위가 있다면 양국은 두 공산품을 교환함으로써 최대 효과를 거둔다.

그러나 한 국가가 모든 상품에 절대우위가 있을 경우 무역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 낮은 생산 단가로 반도체는 100억 달러, 자동차는 50달러의 흑자를 낼 만큼 생산력이 높다고 치자. 이 경우 우리는 미국에서 자동차와 반도체를 수입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미국도 일방적으로 우리 제품을 사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절대우위론의 입장이다.

영국의 고전학파 경제학자 리카도(1772~1823)는 이같은 절대우위론의 맹점을 지적하며, 비교우위를 주장했다. 비교우위는 어떤 재화를 생산하는 데 상대적으로 더 낮은 비용이 드는 경우를 의미한다. 리카도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자동차 대신 반도체에 집중 투자할 경우 200억 달러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리카도는 이처럼 비교우위가 있는 재화를 특화해 생산.수출하고, 비교열위의 재화는 수입하면 모든 국가가 이득을 얻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따라서 한.미 FTA도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무역자유화를 촉진해 양국 모두의 이익을 증진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역자유화를 통한 경쟁의 도입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증진시킨다.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퇴출되고 높은 산업은 더 확장돼 자원의 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취약한 산업 부문의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 감소는 경쟁력이 강화된 산업부문이 해결한다. 무역장벽이 철폐돼 교역이 늘면 좋은 품질의 재화를 싸게 소비할 수 있어 결국 국민 전체에 혜택이 돌아간다.

차은영 교수(이화여대.경제학)

☞생각 플러스 : 미국에 대해 우리나라가 절대우위거나 절대열위인 산업을 구분한 뒤 이에 따른 수출 전략을 세워 보라.

과학 … 한발 앞선 미국 기술, 국내 산업 발전 이끌 듯

경제활동이 점차 지식.기술 집약화하면서 개별 국가의 과학기술활동이 다른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산하 기술경제프로그램(TEP)에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정책, 과학기술인력의 교육과 국제적 이동, 국제협력 등 과학기술 관련 이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최근에는 세계무역기구(WTO) 등 자유무역 확산 여파로 이런 흐름이 더 강화되고 있다. 2002년 무역장벽 철폐를 위한 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과학기술 부문이 주요 협상 의제로 다뤄진 것도 이러 이유에서다.

전통적 무역론은 국가 사이의 생산성과 부존자원 차이가 국제무역 유형을 결정한다고 봤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 간 무역유형은 각국 노동의 질.생산설비.과학기술 인프라와 같은 지식과 기술이 체화된 인적자본과 물적자본의 양과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즉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이 국제무역에서 무엇을 수출하고 수입할 것인지 결정한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이 그 나라의 무역 유형을 결정짓는 것처럼 국제무역이 국내 과학기술 발전에도 영향을 끼친다. 자유무역의 확대는 상품.서비스 등 생산물은 물론 자본과 인력 등 생산요소의 이동성도 제고시킨다. 과학기술이 집약된 상품의 국제 이동과 과학기술 인력의 교류, 선진적인 과학기술 인프라와 시스템에 대한 학습 기회도 그만큼 많아진다.

과거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수출 중심의 국제무역 추진,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적극적인 선진 기술 도입과 응용 전략이 주효했던 데 있다.

우리 사회는 최근 미국과 FTA 체결로 기대만큼 많은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자유무역과 과학기술 간 상호 작용 관점에서 보면 한.미 FTA 타결은 국내 산업 발전을 이끌 수 있다. 미국의 선진 기술 협력과 이전, 과학기술 인력 교류, 선진 과학기술 제도와 시스템 학습 등의 기회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기술경영연구센터)

☞생각 플러스:과학기술의 발달이 무역 자유화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라.

국제통상 … 자유무역은 대세 … 약소국 피해 줄일 방법 찾아야

한.미 FTA 협상 타결로 자유무역론자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자유무역을 시대적 조류로 받아들이고 경쟁력을 갖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무역이 대세일 수는 있어도 전적으로 선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FTA가 우리 산업에 경쟁력을 갖추게 하고 수출 시장을 넓히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경쟁과 개방으로 인한 역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자유무역은 강자의 보호무역'이라는 지적처럼, 강대국과 개발도상국이 상호주의에 입각해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약한 개도국은 자국 산업 보호 장치가 없을 때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의 실패로 한 국가의 산업이 붕괴되면 이는 일국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한.미 FTA 협상에서 자유무역을 강도 높게 요구한 미국 역시 19세기 중반에는 보호무역을 강하게 추진했었다.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유럽에 비해 경제 수준이 떨어졌던 미국은 국내 산업 보호와 선진 유럽 경제 팽창을 막기 위해 보호무역을 주장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 기적도 중화학 공업 등 전략산업을 적극 보호하고 육성한 조치에 힘입은 바 크다.

그렇다고 세계 경제의 상호의존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오늘날 지키고, 막고, 빼는 식의 19세기 보호무역을 고수할 수 없는 면도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패러다임의 재검토가 요구되는데, 이런 흐름의 대표적인 것이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은 무작정 모든 국가에 시장 개방을 강요하지 말고 모두가 공정하게 무역을 하자는 주의다. 예컨대 스타벅스 등 선진국 대형 커피전문점은 남미를 포함한 개도국 커피 생산 농가에 이익을 돌려주겠다며 비싼 가격에 원두를 구매한다.

공정무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도국이 어느 단계에 오를 때까지 보호무역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내세우기도 한다. FTA가 강대국의 '통상 독재'로 귀결되지 않고 양국 모두에 유익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이해영 교수(한신대.국제통상)

☞생각 플러스:보호무역과 공정무역의 차이점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라.

역사 … 서양 문물 받아들인 일본, 20세기 초 열강 대열에

한.미 FTA가 체결됐다. 찬반 양론이 거듭되는 상황이지만 역사적 평가는 아직 이르다. 그래도 그 '평가'가 궁금할 것이다. '무리'라는 전제 아래 역사 속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지난 19세기 조선과 중국, 일본의 개국 과정은 지금 많은 것을 시사한다. 150여 년 전 서양에 문을 열 당시 3국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조선이 개방에 가장 소극적이었다. 개국을 한 연도만 해도 청나라는 1840년, 일본은 1854년, 조선은 1876년이다. 3국의 개국 과정은 이후 왜 조선과 중국이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됐는지, 일본은 왜 제국화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중국을 먼저 보자. 당시 청나라는 '세계의 중심'임을 자처했다. 중화사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보다 발전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선은 무지했고 무능했다. 청이 서양의 침공으로 무너지고 있을 때도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했다. 조선은 결국 세계의 흐름을 알지 못한 채 외침을 막을 능력도 없이 버티다 뒤늦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식민지로 편입되는 운명을 겪었다.

일본은 달랐다. 처음에는 일본도 버텼다. 정권을 장악했던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가 외세와 일전을 겨뤘다는 점은 청이나 조선과 같았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 그 한계를 절감했다. 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고, 그들과 함께 조선과 청을 몰아붙여 열강의 반열에 올랐다.

세계화와 개방의 파고가 거센 21세기 초 3국의 상황은 또 다르다. 한국은 한.미 FTA를 체결하며 문호를 활짝 여는 데 가장 앞장서 있다. 과거와 달리 이제 한국은 세계의 흐름도 안다. 미국에 유학 중인 학생 수가 10만 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머뭇거리고 있으며, 중국은 아직 자국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가 19세기와 즐겨 비교되는 이유다.

이재광 이코노미스트 전문기자(사회학 박사)

☞생각 플러스:조선이 19세기에 능동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지금 우리 모습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