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원 數 늘리는 게 정치개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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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치개혁이란 이름으로 국회의원 정원을 늘리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유감이다.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세배를 넘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제는 위헌 결정이 났으므로 일부 조정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의원 숫자를 늘릴 어떤 타당한 이유나 명분도 찾기 어렵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어디 의원 수 부족 때문인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는 의원 정수를 현행 2백73명에서 2백99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지역구는 2백27명에서 1백99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는 46명에서 1백명으로 늘리자는 것이다. 돈이 많이 드는 지역구 수를 줄이고 정책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라고 한다. 비례대표를 늘린다고 일을 잘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 또 정치개혁의 목표 중 하나인 돈 안드는 정치행태를 정착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의원 수만 늘리자는 발상엔 공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동안 비례대표는 공천 헌금이나 당 지도부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나눠먹기로 이뤄져온 게 현실이다. 공정성을 기할 만한 아무런 장치도 없이 비례대표만 늘리자는 것은 새로 등장한 정치지도자들의 세력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 직접선출권을 제한한다는 논란을 감수하면서 갑자기 대폭 늘려 어떻게 하려는 건가.

의원 정수에 대한 논란이 전체 숫자만 늘리는 쪽으로 흘러가선 안 된다. 지역구는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만 늘려 3백40명으로 늘리자는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지역구 인구편차 조정에 따라 기존 선거구를 통합해 정리하면 의원 정수는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이를 거꾸로 늘리려는 것은 현직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려는 집단이기주의와, 집권 측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편의적 발상과 다름없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개혁은 정경유착과 부패를 근절하자는 것이다. 현재의 의원 수만으로도 국민의 대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위헌 결정을 존중하는 선에서 지역구만 일부 축소 조정하고 정치개혁을 엉뚱한 방향으로 더 이상 끌고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