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분쟁 일번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가다] 3. 고향 찾은 자와 잃은 자, 대결의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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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보이는 언덕이 3천여년 전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윗과 골리앗이 싸웠던 곳이다. 아버지는 말했다. 이곳이 우리의 고향이라고." 지난달 13일 셔울 골드슈타인이 기자에게 말했던 이곳은 예루살렘 남쪽 20㎞에 있는 4만5천여명의 '구시에치온'이라는 작은 도시다. 이곳은 '유대인 정착촌'으로 불린다.

1927년 고향을 되찾기 위해 처음으로 유대인들이 이곳에 정착했다. 그러나 나무 하나 없는 황무지는 이들을 거부했다. 8년 후 일단의 유대인들이 이 땅에 다시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원주민인 팔레스타인인들의 공격에 모두 쫓겨났다. 43년 다시 유대인들이 마을을 만들었고 5년 후 주민 2백40명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몰살당했다. 그러나 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기어코 이곳을 차지했고 이후 유대인의 땅이 됐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여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폭탄을 실어 보낸 당나귀가 이곳으로 접근하다 폭사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땅의 역사다. 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유대인들은 주변 아랍국들과의 전쟁과 정착으로 '고향'을 찾아갔다. 이들을 움직인 원동력은 나라 잃고 2천년간 떠돌며 당했던 고통과 고향을 되찾겠다는 염원이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만도 이런 정착촌은 1백50개로 40만명이 살고 있다.

그러나 땅을 향한 유대인의 집념은 다른 한쪽에서는 필연적으로 땅을 잃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만들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인 베들레헴 외곽에 있는 드헤이셔 마을. 1㎢ 남짓한 땅에 1만여명이 바글거리며 살고 있는 이곳. 유엔이 만든 팔레스타인 난민촌이다. 이곳의 주민들은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고향을 잃은 이들과 그 자식들이다.

난민촌의 자치기구격인 입다문화센터에 따르면 이곳의 한 가족(7명)당 월평균 소득은 1천셰켈(27만여원)이다. 대부분 베들레헴으로 나가 날품을 팔고 난민촌에 만들어진 작은 공장들에서 생계를 이어간다. 난민 2세대인 압바스 샴로치(40)는 "지금 우리를 받아주는 곳은 없다. 그러나 부모가 가지 못했고 내가 가지 못하더라도 내 후손들은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유엔구호기구(UNWRA)에 따르면 고향을 떠나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들에서 떠도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3백7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고향을 되찾았다는 유대인과 고향을 빼앗겼다는 팔레스타인인들 간에는 지금 '장벽'을 놓고 극도의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일 드헤이셔 북쪽으로 45㎞ 떨어진 칼킬리야를 찾았다. 이곳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3m 높이의 철조망을 사이로 팔레스타인 도시인 칼킬리야와 유대인 마을이 나뉘어 있다. 이 철조망에는 전자감응장치가 돼 있어 건드리거나 파손하면 곧바로 이스라엘군 부대에 신호가 간다. 따라서 철조망 바깥쪽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철조망을 따라 수십㎞마다 만들어져 있는 검문소를 통해서만 이동해야 한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실의 제이콥 달랄 대위는 "이 '보안펜스(security fence)'는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들의 이스라엘 지역 난입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니다 유니스 조정관은 "이 '분리장벽(segregation wall)'은 팔레스타인 도시와 마을을 완전히 고립시켜 고사시키려는 민족 차별 정책"이라고 분노한다.

장벽 건설은 아리엘 샤론 총리가 취임한 후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지난 2일 만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하니 알마스리 공보처장은 "샤론 정부는 최악의 정부"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일주일 전 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테러를 포기하지 않는 아라파트(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를 협상의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땅을 놓고 벌어지는 양측의 대립은 끊임없는 인적.물적 희생을 가져오고 있다. 양측 발표를 더하면 2000년 9월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 이후 모두 3천4백44명이 죽었다.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은 물론 이스라엘의 경제에도 타격을 줬다. 인티파다에 따른 경제 불안이 이어지며 이스라엘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00년 기준으로 지난해 마이너스 2% 성장률을 기록했다. 테러 방지에 나서는 막대한 '보안 비용'도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요인이다. 완성되면 7백㎞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장벽에 최고 90억셰켈(약 2조4천억원)이 들어갈 전망이라고 예루살렘 포스트는 지난달 보도했다.

지난 1일 기자가 마지막으로 찾은 예루살렘 성전. 이날도 어김없이 성전의 한쪽에서는 이슬람 교도들이 신발을 벗고 아크사 모스크로 들어가고 있었고, 그 아래쪽 '통곡의 벽'앞에선 유대인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취재를 마친 뒤 서울에서 만난 한 이스라엘 고위 외교관은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city of peace)'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자기들의 수도라고 주장하는 예루살렘. 이곳이 이름 그대로 평화의 도시가 될 날은 언제인가.

예루살렘.라말라.칼킬리야=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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