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공에도 색깔이? 코트 인종차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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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농구연맹(KBL)은 13일 긴급 재정위원회를 열어 '12일 KTF와 LG의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심판을 폭행한 파스코를 제명한다'고 결정했다. 제재금 500만원도 부과됐다. KBL은 '자극적인 언행으로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책임을 물어' KTF 장영재에게도 제재금 50만원의 징계를 내렸다. LG 구단은 파스코를 퇴단 조치했다.

파스코는 제명됐지만 코트 폭력의 원인은 여전히 숨어 있다. 특히 외국인 선수들에게 집중되는 과격한 파울은 '코트의 인종차별'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 이방인에게는 거침없이 파울=LG 현주엽은 "국내 선수끼리라면 하지 못할 심한 파울을 외국인에겐 한다. 서로 잘 알고, 언제든지 한 팀에서 뛸 수 있는 사이라면 그러지 못할 것"이라며 "상대 외국인 선수에게 심하게 파울했을 때 팀에서 '잘했다'는 칭찬을 듣기도 한다"고 했다.

프로농구 원년인 1997시즌부터 외국인 선수를 경험해 온 모비스 우지원은 "외국인 선수는 팀 전력의 핵심이다. 당연히 집중 견제를 받는다. 더구나 파스코처럼 다혈질인 경우 그런 면을 이용하는 작전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선수는 "실력으로 외국인 선수를 막기 힘들다. 그래도 식스맨들은 임무(수비)를 완수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거친 파울이 나온다"고 고백했다.

◆ 지나친 의존과 통제의 어려움=현재 각 팀은 외국인 선수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5명 중 2명이 국내 선수보다 기량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로(2, 3쿼터는 1명만 출전), 이들이 전체 전력의 50% 이상을 담당한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 선수들도 2~3라운드만 지나면 '내가 빠지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구단에 지나친 요구를 하고, 충족되지 않을 경우 불만을 터뜨리는 선수도 많다. 좋은 성적을 위해 꼭 필요한 선수다 보니 구단이 끌려가는 경우도 있다.

◆ 피해의식 증폭=매너가 좋기로 유명한 LG의 찰스 민렌드는 "몇 차례 같은 반칙이 반복되면 심판이 선수 보호 차원에서 빨리 지적해줘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항의해도 (심판이)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며 "의사소통이 힘들다는 건 이해하지만 농구 용어로 이야기하면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심판들은 외국인 선수에게 일일이 설명하기 힘드니까 외면하는 것이지만 당사자들은 '심판이 우리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연속되는 거친 파울과 심판이 무시한다는 불만이 쌓여 '피해 의식'을 증폭시킨다. 파스코가 대표적인 사례다.

◆ 신속하고 일관된 판정=미국 프로농구(NBA)에도 반칙 작전이 있고, 잘하는 선수에게 파울이 집중된다. 그러나 최소한 때리지는 않고 '끌어안는' 경우가 많다. 12일 경기에서 장영재가 파울한 뒤 폭언했을 때 심판이 즉각 테크니컬 파울을 줬다면 폭력 사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심판들이 인텐셔널 파울과 테크니컬 파울 판정을 일관성 있게 한다면 외국인 선수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줄어들 것이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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