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그 따뜻한 카페에는 장애가 없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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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카페가 있다. 경기도 포천 광릉 수목원 부근의 스파게티 전문점 '카페 젠(www.bokjihouse.co.kr.031-542-5119)'. 통나무 방갈로, 통유리 외벽에 스며드는 햇살, 넓은 마당에 쌓아놓은 장작…. 겉모습은 주변의 여느 카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장애우와 함께 합니다'라는 문장이 조그맣게 적힌 플래카드를 보고서야 특별한 곳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사회복지사 부부 신상국(33).최민숙(31.여)씨가 사재를 털어 두 달 전 문을 열었다. 이 곳의 종업원들은 모두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꿈을 준비하다=종업원 이일권(32)씨와 윤성연(19)씨는 사회복지법인 '애덕의 집'에서 운영하는 '소울 카페(www.cafesoul.co.kr.032-962-2332)'에서 1년여 동안 서비스 훈련을 받은 교육생. 신씨는 그 곳에서 이들을 가르쳤던 교사다. 소울 카페에서도 장애인이 서빙을 한다. 그러나 부부는 욕심을 더 부렸다. 이들이 직접 커피를 만들고 계산도 할 수 있다면, 나아가 카페 창업까지 할 수 있다면…. 부부는 직접 가게를 열기로 결심했다. 쉽지만은 않았다.

"장애인이랑 뭘 한다고요?"

집값이 떨어진다며 주인들은 세를 내주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터에 자리를 잡았다. 살던 집을 처분해 자금을 마련했다.

텅 빈 카페를 두 종업원과 함께 채워나갔다. 집기며 재료를 구하러 다니고 사업자 등록증을 만드는 데도 데려갔다. 커피 뽑기, 바게트 빵 굽기도 배웠다. 청소하는 법도 배웠다. 처음 해 본 화장실 청소, 3시간 30분이 걸렸다. 오픈 전 날, 긴장된다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종업원들을 부부는 억지로 재웠다. 그러나 새벽 5시쯤 누군가가 우는 소리에 모두 잠에서 깼다.

"손님 많이 오게 해주세요. 실수 안하게 해주세요. 엉엉엉…."

두 달이 지나고=그 새 간판은 너덜너덜해졌다. 간판에 붙어 있던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모조리 떼 버린 탓. 카페에 들어오려던 차들이 간판을 보고 돌아 나가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나가 버리는 손님도 있었다.

'손님,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앞을 가로막고 묻고 싶었지만 모두들 꾹 참았다.

손님이 적어 두달 내내 수백만원 적자를 봤다. 계산을 잘못해 돈을 덜 받은 경우도 여러 번. 컵과 그릇도 하도 많이 깨 짝짝이가 됐다.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종업원들은 알아서 일한다. 화장실 청소도 이제 5분 만에 뚝딱 해치운다. 손님 네 명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척척 서빙한다. 일권씨나 성연씨는 커피 박사가 됐다. "서비스에 감동했다"며 카페를 다시 찾은 손님도 있었다. 장애인을 고용하겠다는 취업 의뢰도 세 건이나 들어왔다. 식구도 늘었다. 김미향(18.여)씨가 2주 전부터 합류했다. 최씨가 전에 일하던 복지관에서 관리하던 소녀. 가족 중 유일한 비장애인이었던 언니가 최근 이민을 떠나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카페 일이 적성에 맞았다.

종업원의 꿈, 꿈, 꿈=일권씨와 성연씨의 꿈은 카페 사장이 되는 것이다.

"무대 한쪽에서는 음악을 연주하게 할거예요. 음악이 있어야 대화도 잘 되거든요."

옛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해 모형 만드는 취미에만 빠졌던 일권씨. 이제 영업 전략까지 세울 정도로 당당해졌다. 성연씨는 요리를 배울 참이다. 미향씨의 꿈은 "잘못해도 예쁜 말로 혼내는" 착한 학교 선생님. 오빠들이 척척 일하는 걸 보면 그저 좋다는 그녀에게 아직 꿈은 실감 나지 않는 화두다. 정신지체 장애는 성인이 되기 전에 유전적 원인.질병 등으로 정신 발달이 멈춘 상태를 말한다. 대개 적절한 교육과 관리 감독을 받으면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일할 기회는 거의 없다.

주인 부부의 꿈="돈 벌 생각은 없어요. 이 친구들이 혼자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죠."

"마음은 편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그런가봐요."

부부의 꿈은 제자들이 제2, 제3의 카페 젠을 내는 것. 하지만 수익이 나야 꿈도 이룰 것 아닌가. 기자가 취재하던 5시간여 동안 손님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마당까지 왔다가 돌려 나간 차량만 한 대 있었다.

"이제 시작이니까 희망은 있어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맛과 서비스도 계속 업그레이드할 겁니다. 구족(口足)화가의 그림도 판매하고 시각 장애인의 지압 강좌도 열 생각이에요. 여기 오신 분들이 가슴 뭉클한 뭔가를 얻어가도록요. "

취재를 마치고 카페에서 나가는 길, 한 가족이 차를 몰고 들어왔다. 그들은 차를 돌려 나가지 않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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