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R­멀티비전 「제작붐」/첨단홍보(정치와 돈:8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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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4천여만원 들어… 비당원에 방영 말썽도/주간연재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기발한 방법들이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VTR·멀티비전 등을 이용해 후보를 선전하는 영상홍보물이 새로운 선거운동방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영상매체를 통한 선거운동은 지난번 13대총선때만 하더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일. 그러나 14대 총선전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울·부산·대구 등 대도시지역 후보들 중심으로 활용됐으나 최근 들어서는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VTR와 멀티비전 등을 통한 영상홍보물은 제작비용과 제작소요기간이 길다는 점이 부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영상물은 제작만 하면 TV에 익숙한 유권자들을 손쉽게 파고들 수 있고 특히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이 일일이 후보의 인물됨됨이와 공약 등을 홍보하지 않아도 될뿐 아니라 육성 또는 인쇄물을 통한 전통적 방법에 비해 현장감이나 설득력이 뛰어나 선전효과도 월등하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영상홍보물은 장소와 기기만 확보하면 선거운동기간 내내 사용이 가능한 반영구적 특징때문에 한번 보고 버리거나 아예 보지도 않고 내팽개쳐 버리는 1회용 홍보유인물에 비해 경제적이라는 점도 영상홍보물을 선호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 영상홍보물을 통해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후보들은 서울의 이종찬(종로)·오유방(은평갑)·김덕룡(서초을·이상 민자당),김덕규(중랑을)·김희완(송파갑·이상 민주당),부산진을의 김정수·대구의 김복동(동갑)·박철언(수성갑)·강재섭(서을)·경북의 이영창(경산­청도·이상 민자당)씨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로 전국적으로는 1백명 가량이 이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영상홍보물은 대부분 VTR를 이용하고 있으며 이종찬 후보 등 일부는 슬라이드 멀티비전을 이용하고 있다.
후보의 취향이나 부각시키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영상물의 구성과 편집 등이 각양각색이지만 ▲후보의 성장과정 ▲정치 역점 ▲정치적 소신 ▲의정활동(현역의원의 경우) ▲선거공약 ▲저명인사 또는 유권자 인터뷰를 통한 후보평가 등은 공통된 소재.
방송시간은 대부분 20분내외이며 길어야 30분. 제작기간은 전문광고업체에 맡길 경우 약 20여일 정도가 소요되지만 일부 극성파 현역의원들은 13대 임기 4년동안 지역내 주요행사나 동정,상임위활동 및 대정부질문 등 자신의 활동상황을 그때그때 촬영해 뒀다가 선거홍보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VTR를 이용하느냐,슬라이드를 택하느냐에 따라 제작비가 차이가 나고 전문업체별로도 상당한 가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
광고업체에 의뢰해 제작할 경우 ▲기획·촬영·편집비가 1천5백만원선 ▲테이프 복사비가 개당 5천원으로 1천개의 테이프를 복사할 경우 총제작비용은 2천만원.
이에 비해 슬라이드는 멀티비전이 고가품이어서 20분짜리 슬라이드를 제작하고 멀티비전을 구입할 경우 4천만원 가량이 소요되고 있다.
그러나 박철언 후보의 경우는 과거 정무장관·체육장관시절 자신과 관련된 TV뉴스를 복사해 뒀다가 주요장면들을 재편집해 홍보물로 사용하는 「실비형」인데 『필름구입비·편집비·복사비 등을 합해 5백만원에 끝냈다』고 자랑하고 있다.
영상홍보물은 주로 당원교육용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상당수의 경우는 ▲지구당 창당·개편·단합대회 사전행사용 ▲사랑방좌담회용 등 다목적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영상홍보물을 일반 유권자들을 상대로 상영할 경우 선거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예외없이 이 필름은 당원교육용으로 제작된 것임을 자막으로 표시하고 있으나 일부 후보들은 비당원을 대상으로 한 사랑방좌담회에서 VTR를 이용해 홍보물을 상영하는 사례도 있다.
4천만원을 들여 VTR홍보물을 제작했다는 서울의 한 후보는 『사랑방좌담회에서 목청이 터져라 떠들어대는 것보다 VTR를 상영하는 것이 훨씬 효과도 크고 반응도 좋다』면서 『무엇보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 인사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좋다』고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영상홍보물이 후보를 소개·선전하는 것은 공통이지만 후보를 부각시키는 기법은 각양각색.
이종찬 후보는 선친의 독립운동 활약상에서부터 시작,만주출생 경력,경기고­육사시절,문민정치를 지향하는 정치소신 및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고 박철언 후보는 북방정책 수행,3당합당,남북 축구단일팀 구성,한민족체전 개회선언 등 정부·체육장관시절의 치적들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오유방 후보는 구공화당 의원시절 정풍운동에 앞장섰다가 제명되고 정치규제에 묶여 칩거했던 과거에서부터 자유 경선과 세대교체론을 주창하는 신정치그룹의 멤버로서의 활동상과 과거 자신이 공약으로 걸었던 지역개발의 변화상을 생생히 담아 「개혁」과 「지역일꾼」의 이미지 홍보효과를 노리고 있다.
이에 반해 어둡고 불행했던 지난 시절들을 상기시키면서 당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자신의 모습을 대비시켜 「민주화 인사」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경우도 있다.
김덕룡 후보는 3∼5공시절의 반독재시위 현장에 민주화투쟁으로 투옥되는 자신의 모습을 연결시키고 있고 민주당의 김희완 후보는 「5·16」「10·26」「12·12」「5·17」 등 불행했던 사건들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집중 소개해 긴장감을 유발시키면서 민주화의 실천의지와 개혁의지를 밝히는 자신의 모습을 연결시켜 「민주인사」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콘트라스트(대조)기법」을 구사하고 있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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