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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고 있나(러시아 자본주의 실험:3)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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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식료품점마다 장사진·선동구호 등장/유일한 처방전인 서방지원도 기대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월 병든 러시아 경제를 살리기 위한 「충격요법」도입을 선언하고 가격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가격자유화의 목적은 상품가격결정을 시장기능에 맡김으로써 왜곡된 가격구조를 시정하고 상품생산을 늘리는 한편 정부보조금을 폐지,재정적자를 줄이려는데 있다. 그러나 가격자유화는 가격폭등을 몰고 왔으며 일반서민 생활에 큰 타격을 안겨줬다.
가격자유화가 실시된 이후 한달이 채 못되는 지난 1월말 현재 물가는 3∼4배 폭등했으며 국민총생산(GNP)은 16% 하락했다. 올해 전체로 볼때 인플레이션은 8백∼1천%에 이를 것이며,GNP는 최소 2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당초 예상과 달리 상품생산은 늘지 않고 있어 국민들은 물가폭등속에 물자부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충격요법이 사전준비없이 시작됐다고 그 잘못을 지적한다. 이들은 가격개혁과 함께 경제독점해제 및 기업민영화,그리고 루블화 안정조치가 함께 실시돼야 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급진론자들은 점진적 방법은 고통을 길게할 뿐이라고 반박한다. 이들은 러시아라는 중환자는 정상적 방법으로는 치료할 수 없으며 충격요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달말 새로운 경제대강을 발표,지난번 1차 가격자유화 대상에서 제외됐던 빵·육류·우유등에까지 가격자유화를 확대하고 대외무역을 완전 자유화하기로 하는등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오는 4월 IMF에 가입,6월부터 IMF원조를 받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제개혁 책임자인 예고르 가이다르 부총리는 그때 가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만으론 상황이 크게 개선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현재 러시아 경제는 한마디로 파국이다. 물자부족,통화공급 확대로 인한 초인플레,행정부재,물자공급체제 붕괴등은 공황을 방불케한다. 지난해말 2백만명(1.5%)에 달했던 실업은 연말까지 5백만∼1천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오스트리아 빈 비교경제연구소 페테르 하블리크 부소장은 현재 러시아는 정치·경제적 대혼돈에 빠져 정부는 정책조정기능을 상실했으며,정부내에서도 개혁에 대한 의견이 대립,통일된 정책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개혁실시에 러시아가 독주,독립국가연합(CIS)공동협력체제가 붕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도 매우 심각하다. 구공산당 세력들이 민중의 불만을 업고 세력을 모으고 있으며,보수관료들의 개혁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군부의 움직임도 주목거리다. 경제개혁에서 군사예산의 대폭삭감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소련에서 군산복합체는 GNP의 30%를 차지해왔으며,구소련군은 약 4백만명에 달한다.
지난해 보수파 쿠데타실패후 군부의 힘이 크게 약해진 것은 사실이나 군부의 지지없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옐친 대통령은 최근 군장교들에게 봉급 두배 인상을 약속했다.
이같은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뾰족한 수는 지금으로선 없다. 서방 경제학자들도 제대로된 처방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서방국가들로부터의 지원이나 이 또한 전망이 흐리다. 지난 1월22∼23일 미국 워싱턴에서 구소련 지원조정 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구소련에 대한 지원협력의 필요성만 다시 확인했을뿐 지원내용,재원마련등에 대해선 별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러시아의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는 최근 이렇게 썼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상황은 74년전의 그것과 흡사하다. 인민들은 빵을 구하기 위해 줄서있고,나라는 붕괴된 상태다. 여러 주권국가들이 출현하고 이상한 복장에 낯선 깃발을 든 무리들이 선동적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끝><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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