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산동/13대 라이벌 맞고발 사태까지(총선 열전현장:3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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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정치냐”“지역정치냐” 「역할론」공방/YS와 화해… 지역개발로 승부수 허삼수/깨끗한 선거·「부정과의 전쟁」선포 노무현
노무현 의원(46·민주) 사무실 8차선도로 맞은편엔 부산진역 광장이 넓게 펼쳐져 있고 수 많은 남녀 시민들이 화사한 봄옷 차림으로 활보하고 있다.
역사를 등지고 시선을 높이면 구봉산·수정산이 솟아있고 성냥갑 같은 슬레이트 판자집들이 산꼭대기까지 빽빽이 자리잡고 있다.
부산지역 최대 격전지인 동구 선거구의 명암이 한눈에 느껴진다.
노의원 사무실이 있는 부산진역 앞 수정2동 대로변과 허삼수 위원장(56·민자)의 사무실인 2백여m 언덕으로 올라간 수정4동 골목길은 그 위치로 보아 지난 4년간 두 라이벌이 벌였던 정치활동의 단면을 상징하는 것 같다.
여의도 국회에서 뛰어난 의정활동을 한 사람중의 하나인 노의원,그의 화려한 「중앙정치」와 13대 낙선이래 산복도로 곳곳을 누비며 주민들만 상대해온 허위원장의 「지역정치」가 맞부딪치는 곳이다.
선거공고일인 7일 오전 8시30분 노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잘못된 선거풍토가 잘못된 정치풍토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 선거에서 어떻게 끊어내는가를 분명히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일당 5천원 고수
『14대선거는 부정선거와 부정정치인과의 전쟁입니다. 나는 전체 운동기간을 통해 운동원의 일당을 5천원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유세장에 박수부대를 동원하지 않겠으며 국회의원이 해서는 안되는 무책임한 지역개발 공약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날 낮 「일당 5천원 고수 원칙」때문에 법정 선거운동원(2백80명)을 미처 채우지 못한 운동원 1백50여명을 모아놓고 노의원은 말했다.
『돈 안쓰기 방식은 막대한 자금·조직력을 갖고있는 저들(허삼수측)의 발을 묶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노의원은 허후보측이 자신을 허위사실 유포혐의로 고발한데 대해 허후보가 ▲당원용 홍보만화를 비당원에게 배포하고 ▲비누세트를 돌린 「증거」를 수집,검찰에 맞고발 했다.
유권자 12만7천여명. 지난 선거에서 8천수백표차로 당락이 엇갈린 두후보의 선거전은 초반부터 고발경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11일 새벽 수정산 약수터를 찾았던 허삼수 후보는 오후 5시쯤 9인승 봉고차를 타고 다시 산마루 범일6동 영세민 거주지역인 인창마을을 방문했다.
연탄 10여장을 등짐으로 지고 올라가던 앳된 여중생의 손을 잡았다.
『어머님 장사는 잘되나. 살펴가제이.』
3당합당으로 김영삼 대표와 「화해」하고 지구당 위원장을 맡은뒤 선거구 전가구를 두번 훑었다는 허후보는 구멍가게 주인,냄새 독한 염색공장 청년들,봉제공장 아주머니들이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영세민 집중공략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연신 허리를 굽히는 그는 기자가 접근하기조차 미안한 느낌이 들정도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노의원이요 그분은 국회의원 된후 이 지역에 한번도 나타난 적이 없어 지역민의 불신이 대단합니다.』
『여기는 아직도 공동변소에 수도물도 시간제 배급하는 부산에서 가장 취약한 동네입니다. 이들과 같이 얘기하면 정치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있는지 회의가 듭니다.』 경쟁자인 노의원을 꼬집는 말이 마디마디 배어있다.
같은시각,노의원도 영세민 지역인 좌천3동 경로당을 찾아 10여명의 노인들에게 『그동안 자주 못들러 죄송합니다』며 말문을 열었다.
『4년 국회생활중 해외여행 한번 못하고 돈 한푼 받아먹은 적 없습니다. 소방도로 놓고 하수도 뚫는 일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시장·구청장·구의원이 하는 일입니다.』
노의원은 부산과 대구의 인구차가 1백50만명이 넘지만 지방특별 교부금은 부산이 오히려 45억원이 적고 도로율도 12.4%로 대구보다 2% 가량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결국 참된 지역발전은 한 선거구 단위로 이뤄지는게 아니라 특정지역 중심의 집권당 정책을 야당이 견제하고 중앙예산을 따올때 가능하다고 장시간 설득했다.
입심좋은 한 할머니가 『앞으론 우리한테 자주와야 한데이』하며 크게 웃었다.
노의원은 경로당을 나서며 『찬찬히 설득하면 다들 풀어지게 돼있어. 마지막까지 한번 붙어보는 거야』라며 운동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오후 10시30분쯤 지구당사에서 잠시 대책회의를 마친 허후보는 이날의 마지막 일정인 상가 두곳으로 향한다. 하루 3천명 악수하기도 이미 목표를 초과한 상태.
13대때 얻은 4만4천표 고정표에 김영삼 대권지지표가 조금만 붙어주면 당선안정권인 5만5천은 무난하리라는 계산이다.
허후보 주변의 한 선거운동원이 휴대한 65쪽짜리 선전용 만화가 눈길을 끈다.
「허삼수와 함께 밝아오는 동구를」이라는 제목의 책자엔 YS와 허후보가 굳게 손잡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노의원이 『다른 사람은 몰라도 5공 주역인 허후보를 YS가 손들어주면 모두가 웃을 것』이라는 비난에 대해 허씨는 『세상이 바뀌었다. 정당인은 조직인으로서 당대표를 충실히 따를뿐』이라는 상황논리로 맞받아친다.
○국민당 지각도전
국민당의 윤조년 후보(50)는 8일 뒤늦게 지구당 창당대회를 열고 노­허 2파전에 뛰어들었다.
『조직은 허씨가 앞서고 선동력은 노의원이 뛰어나다. 그러나 6공의 무능과 민주당의 부패에 부산 시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며 자신의 어부지리 가능성을 전망한다. 무소속 박상욱씨(43)도 후보로 등록했다.
부산 동구 선거전은 「김영삼 바람」이 어느정도 몰아칠 것이냐를 가늠하는 시험장인 동시에 국회의원이 국민 전체의 대표인지 아니면 지역구민의 이해 대변자 인지를 지역유권자들이 선택하는 「시범 전장」이기도 하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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