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직도 금기…윤이상씨 음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재독 작곡가 윤이상씨 작품이 무대배경 음악으로도 쓰이지 못하게 되어 음악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최근 현대 무용가 박일규 교수(서울예전)는 MBC주최 제8회 한국무용제전(26일∼4월3일) 참가작으로 윤씨의 창작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천지인』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MBC측이 윤씨의 음악을 사용한 작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이에 따라 박 교수는 비디오댄스의 개념을 도입한 새 창작무용 『어미』로 출품작을 바꿨다.
『고려시대 공주지방을 중심으로 일어났다가 결국 실패로 끝난 농민 봉기 망이의 난을 통해 현실 극복 의지를 드러내는 작품인데 윤씨의 교성곡 「광주여 영원히」와 「가곡」이 배경음악으로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MBC측이 반대해 작품을 아예 다른 것으로 바꾸었다.』
박 교수는 자신이 원래 의도한 작품을 발표할 수 없게된 사실뿐 아니라 「요즘 같은 시대」에도 윤씨의 음악이 문제시되는 그 자체가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 이 사실이 알려지자 상당수의 문화예술 관계자들도 『윤씨의 작품들을 무용 배경 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조차 막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시대 착오』라고 말하고 있다.
한 음반사는 지난 80년대 말 국내 성악가 윤모씨가 부른 윤이상씨의 독창곡들을 음반으로 만들고자 공연윤리위원회에 그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으나 「절대 불가」라는 구두통보를 받고 지금까지 「해금」을 기다리는 실정.
윤씨가 소위 「동베를린 사건」(69년)으로 체포·수감된 이래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 극도로 금기시 되어 오다 80년대 후반부터 부분적으로 연주가 허용되기도 했다. 89년에는 「윤이상 음악제」가 정부 당국의 승인하에 추진되기까지 했다가 막판에 취소된 바 있다.
전 세계 음악계에서 정상급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는 그가 올해로 75회 생일을 맞게 되자 독일과 일본이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오는 9월 베를린에서 대대적인 「윤이상 음악축제」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 그의 작품이 조국인 한국에서는 비공식적인 「미해금 상태」로 묶여 있는 셈이다. <김민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