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금별 왕자의 경제이야기] (38) 세율을 낮추면 세금이 더 걷힌다고?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세금을 더 걷기 위해서는 기존의 세율을 올리던가,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던가, 세무조사의 칼을 휘두르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고 이강은 말했다. 그런데 이 중 첫 번째인 세율 인상과 관련, 색다른 이론이 있다고 했다.

"래퍼 곡선(Laffer Curve)이라는 게 있어. 1974년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래퍼가 정립한 이론인데, 높은 세율을 낮춰 줬더니 오히려 세금이 더 걷히더라는 거야."

소왕의 눈에서 빛이 났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는 뜻이었다.

"1980년대 스웨덴의 소득세율은 최고 80%에 달했어. 100을 벌면 정부가 80을 세금으로 떼어가니 누가 열심히 일하겠어?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서비스는 좋았지만 부자가 되고픈 개인 욕구를 너무 무시했어. 돈을 벌어도 세금을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었어. 물론 저축도 못했지. 이것은 다시 투자재원 부족으로 이어졌고, 기업과 국가경쟁력 향상에 걸림돌로 작용했어. 그래서 스웨덴 국민들은 80년대 말 총선에서 소득세율 인하를 내건 당에 표를 몰아줬어.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가 된 카를 빌트는 약속대로 세금을 낮춰줬어. 1990-91년 세제 개혁을 단행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소득세율을 대폭 인하한 것이 골자였지. 세율을 낮춰줬더니 오히려 세금이 그 전보다 많이 걷히고 경제가 살아난 거야. 일한 의욕을 북돋웠던 거야. 그런 세제 개혁이 없었다면 90년대 말의 스웨덴 경제의 재건은 불가능했을 거라고 전문가들은 말하지.

소왕은 스웨덴의 현재 소득세율은 얼마냐고 물었다.

"최고 55%라고 알고 있어."

소왕은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매우 높은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세율이 높으냐'고 물었다. "기본적으로 나라가 거둔 세금을 교육과 건강보험을 제공하지. 직장에 다니던 사람이 실직해도 1년 동안은 계속 정부에서 월급을 받을 수 있어. 1년 후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국민들의 평균소득에 해당하는 돈을 실업 급여로 받지."

이강의 설명에 소왕은 '지난달 파리 여행에서 들었던 프랑스의 사회보장제도와 골격이 비슷한 것 아니냐'고 했다. "그렇지. 유럽의 높은 사회복지서비스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에서 시작됐고, 이어 프랑스와 독일로 다 확산됐던 것이니까."

이강은 설명을 이어갔다. "높은 세율은 일할 의욕을 앗아가지. 소득세율은 흔히 누진세율이 적용돼. 누진세율이란 소득이나 이익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아지는 걸 말하지. 같은 세율이라도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내는 세금이 많아지는데, 세율까지 높아지니 오죽 심하겠어. 이런 구조 아래서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안 하게 돼. 왜냐면 돈을 더 벌어도 세금으로 뜯기는 걸 빼면 손에 남는 게 없기 때문이지. 이 이론은 1980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선 로널드 레이건의 마음을 사로잡았지. 그래서 레이건은 세금 삭감 공약을 내걸었어. 그의 경제정책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불리는데 기업과 개인의 세금을 깎아줘 경기회복을 북돋운다는 것이 핵심이었지."

<레이거노믹스에 대하여>

소왕은 레이거노믹스란 말이 어렵다며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이강은 레이거노믹스는 지금도 많은 경제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라며 입을 열었다.

"레이거노믹스는 한 마디로 '공급중시 경제학(supply-side economics)'이라고 해.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공급하는 기업을 중시하는 정책이지. 그래서 자원도 일반 소비재보다는 기업들의 생산활동에 필요한 기계 등 자본재로 더 많이 배분되도록 하지. 한마디로 생산력 증강에 초점을 맞추는 경제정책이야. 물건이 많이 생산되면 물가도 안정된다는 논리지. 구체적인 수단으로 정부는 규제를 완화해 기업들의 활동폭을 넓혀주고, 소득세는 낮춰주지."

그래서 감세 → 저축 증가 → 이자율 하락 →투자의욕 증대 → 생산력 증대 → 물가 안정으로 이어지게 하고, 동시에 감세로 근로의욕이 살아나서 생산성 향상이라는 선순환을 기대하는 정책이라고 이강은 설명했다.

소왕은 레이거노믹스가 소기의 성과를 거뒀느냐고 물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해 1981년부터 89년까지 8년간 재임했는데 이 기간 중 미국 경제는 보기 드문 호황을 기록했어. 근로자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1.8% 성장했어. 전임자인 지미 카터 행정부(0.8%)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던 거지. 세금을 깎아주고 소비와 투자를 촉진한 결과가 빛을 본 거야. 특히 제조업 부문의 생산성은 연평균 3.8% 증가해 2차 대전 등 전쟁을 제외한 평화시기로는 최고 기록을 달성했어. 세율 인하에 의한 경기 부양 및 고용 증대 효과로 실업률은 80년에 7.0%에서 88년 5.4%로 떨어졌어. 물가 상승률도 80년 10.4%에서 88년에 4.2%로 낮아졌어."

"그 정도면 거의 만점 짜리 경제정책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소왕이 말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러나 레이건 시대에도 그림자는 있었어.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과 마지막 냉전을 치르고 있었지.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하면서 국방비가 왕창 늘어나 연방정부 부채가 81년 GDP의 22.3%에서 89년엔 38.1%로 치솟았어. 규제 완화의 부작용으로 '저축대출조합'이 파산하는 문제도 나타났어. 더구나 이 사태를 조기에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1250억 달러의 추가 정부부채가 발생했어. 금융기관 파산율도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사상 최고 수준에 달했지." 이강의 긴 설명에 소왕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였다.

심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