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소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봄이 왔다. 옛시 한구절이 생각난다.
「무릉도원의 봄소식을 밖에 알리지 않으려고 계곡의 개울에 떠내려가는 복숭아 꽃잎을 그물로 모두 건졌건만,아랫마을 어부는 스스로 봄이 왔음을 알고 예와 다름없이 선경의 도원에 올라와 있더라」(강진도화무릉춘 어랑의구도선원).
자연을 등진 매연 자욱한 도심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백화점 쇼윈도에는 이미 지난주부터 봄을 알리는 새 패션의 여성용 봄옷들이 선을 보인다.
때마침 내린 봄비는 대지를 포근히 적셔 이 봄의 넉넉함을 느끼게한다. 곧 산꽃이 울긋불긋 피어나고 골짜기에 그득히 물이 고이면 짙푸른 봄의 정경이 산하를 그득히 메우리라.
불심이 깊던 소동파는 봄철 자연의 경개에서 느낀 평상심의 한 단면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계곡의 물 흐르고 새 우는 소리가 부처님의 장광설인데 산인들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리오. 여래의 8만4천법문을 다른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내보일까.」
길고 길었던 나목의 계절. 그러나 그 겨울철은 우리에게 이 찬란한 봄을 맞을 넉넉한 마음을 길러주었다.
활짝 폈던 꽃들도 지고 그 화려하던 모습과 향기도 간데없이 털어보낸채 쓸쓸히 서있는 저 나목들에서 우리는 미망이다 오득이다 하는 꽃이 지고,광명이니 무명이니 하는 그림자가 사라진채 가슴속에 한점의 희우도 없는 일체를 털어버린 세계를 보았다.
이제 음의 계절에 품었던 온갖 욕심과 부정의 탈을 벗고 양의 계절인 봄을 맞자.
옛날 남천선사와 조주스님이 주고받았던 선문답.
『유를 깨달은 사람은 어디로 가야합니까.』
『그는 산으로부터 내려가 아랫마을의 한마리 소가 되어야 하리.』
남천의 대답이 곧 이 봄을 맞는 평상심이 돼야겠다.
유를 깨달은 근로자들이여,사장님들이여,우리 모두 우주와 어울려 공존하는 부지런한 한마리의 소가 돼보세.<이은윤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