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학생이 교수를 때리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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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수와 학생의 관계란 존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이 기본적인 덕목이 지켜지지 않는 한 대학이라는 공동체는 존재할 수도,존재할 필요도 없게 된다. 민주화 4년의 열풍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뼈아프게 반성해야할 대목이 사제간의 존경과 신뢰의 상실이다.
목원대 학생들의 교수 삭발사건에서 한국 외국어대 학생들의 정총리 폭행사건에 이르는 일련의 학생들에 의한 스승 폭행사건은 사제간의 전통적 인륜을 무시했다는 단순한 감정의 차원을 넘어선다. 대학생 자신들이 속해 있는 대학사회의 근원적 규범과 질서를 그들 스스로가 무너뜨린다는데 대한 현실적 우려가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러한 현실적 우려가 광주 동신전문대에서 또 나타났다. 농성중인 학생들을 저지하던 교수를 학생들이 집단폭행해서 턱이 빠지는 상처를 입혔다고 한다. 보도에 따른다면 폭행한 학생들은 그 대학 학생도 아닌 타대학에서 「원정」을 온 학생이라는 것이다.
다수의 교직원이 소수 농성중인 학생들을 강압적으로 해산하려들자 이웃대학에 원군을 요청해서 수세에 있던 학생들이 공세로 바뀌어 교직원을 구타하고 학교기물을 파괴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금까지의 교수폭행사건이 소수 학생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음에 비해 이번 동신대 사건은 마치 교직원과 학생간의 편싸움을 연상케하는 기막힌 사건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다.
학생들쪽의 주장대로 교직원의 농성저지가 지나치게 강압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힘에는 힘으로 맞서 보복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대학 사회에서,그것도 교수를 상대로 어찌 가능한 일인지 도저히 상식으로는 생각조차 해볼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서 대학이 진리와 이성을 존중하고 탐구하는 상아탑이라는 원론적인 말을 끄집어낼 수도 없고,스승과 제자의 관계란 존경과 신뢰의 바탕위에서 이뤄진다는 기본적 규범임을 되풀이할 기력을 잃는다.
진리와 이성보다는 투쟁과 폭력을 미화시키고,존경과 신뢰보다는 적과 동지의 편싸움으로 갈라서는 망국의 풍조가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이 대학 사회 어딘가에 남아 있음을 우리는 심각한 우려와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정총리 폭행사건 이후 대학내의 교수폭행사건이란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음은 국민적 공감대로 받아 들여졌다. 또 소련의 몰락이후 학생들의 과격행동이나 어떤 이름의 투쟁도 대학 내부에서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다는 사실을 운동권 내부에서 인정하고 있는 오늘이다.
이런 흐름속에서 등록금인상 투쟁을 빌미삼아 교수를 집단 편싸움 형식으로 폭행을 가했다는 사실은 학생들 스스로도 용인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 패덕행위라고 봐야한다.
폭행에 가담한 학생들은 교직원들에게 정중하고도 깊은 사죄를 해야할 것이고 이같은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대학생 스스로가 무너진 대학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회복하는 모범적 노력을 끊임없이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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