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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천사'로 학교폭력 날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터넷 비즈니스과 1학년 X반 황XX 교실에서 담배 피워요….'

생활지도부장을 맡고 있는 대구 구남여자정보고 이성봉(52) 교사의 휴대전화에 갑자기 문자 메시지가 날아든다.

이 교사는 곧바로 교실을 찾았지만 하교한 뒤였다. 그는 대신 담임 교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여 주고 지도를 권고했다. 황양은 다음날 담임 교사에게 흡연 사실을 인정한 뒤 반성문을 썼다.

학년이 바뀐 3~4월 이 학교 생활지도부장의 휴대전화엔 별의별 문자 메시지가 다 뜬다.

'박XX 장XX이 서부초교에서 때렸어요…무서워요. 선생님….''1학년 X반에 김XX 싸우고 있어요….' 등등.

발신자는 교내서 폭력이나 비행을 목격한 친구들이다. 발신번호는 '1004'(천사)번. 친구의 비행을 방치하지 않고 예방하기 위해 익명의'천사'가 보내는 문자 메시지다.

구남여자정보고의 천사 도우미 제도가 올해로 시행 2년째를 맞았다. 놀라운 것은 빗발치던 문자는 지난해의 경우 4월 이후 거의 사라졌다. 이와 함께 학교폭력과 담배 연기도 동시에 사라졌다.

구남여자정보고는 실업계에다 저소득층 주민이 많이 사는 곳에 자리잡아 대구에서도 학생생활 지도가 어려운 대표적인 학교로 통한다. 지난해 3년째 생활지도부장을 맡았던 박성순(47) 교사는 문제 학생들과 씨름하느라 병까지 얻을 정도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학생들 90%가 이용하는 휴대전화의 문자 활용이었다.

박 교사는 지난해 3월 전교생의 휴대전화에 자신의 번호를 등록시키고, 폭력이나 비행을 목격하면 언제든 문자를 날리라고 주문했다. 학생들은 처음엔 친구를 신고하라니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고자질이 아니라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친구를 구하는 '천사'역할임을 설득시켰다.

박씨는 "천사가 많아져 학교폭력이 사라지면 공부는 못해도 인성은 명문이 된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문자가 쏟아졌다. 지난해 3~4월 무려 160여건의 천사 문자가 수신돼 학교폭력 예방작전이 불붙었다. 적발된 학생은 상담과 훈계 그러고도 반복되면 일주일간의 교외 특별교육까지 받았다.

더 놀라운 것은 적발된 학생들의 태도였다.

"처음엔 신고한 친구를 찾아내 두들겨 패고 싶었어요. 그러나 이젠 중학교때 배운 흡연 버릇을 고쳐…천사가 고마울 뿐입니다."

지난해 천사 문자에 걸려든 2학년 김모 양은 패션디자이너가 꿈이라며 밝게 웃었다. 김양은 나아가 후배들 선도에도 앞장서고 있다.

올해는 주로 1학년이 문자에 걸려든다. 천사 문자의 위력을 체험한 2,3학년은 거의 적발 사례가 없다는 것. 구남여자정보고 이재명(57) 교장은 "문자 메시지가 학교폭력을 없앤 것은 물론 단정한 용모와 면학 분위기까지 조성했다"고 말했다.

대구시교육청은 다음달 중 대구지역 207개 중.고교에 공문을 보내 이 제도 도입을 권유할 예정이다. 김갑상(52.학교폭력 담당) 장학사는 "천사 도우미는 교사와 학생 간 '교육 사각지대'를 없애는 훌륭한 시스템"이라며 "실업계가 이 정도면 인문계 중.고교는 효과가 더욱 클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대구=송의호.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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